총선을 앞두고 운명을 생각한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참다운 의미는 무엇일까?운명이란 사람에게 닥쳐 오는 모든 길흉화복, 또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큰 힘이라고 「국어사전」을 풀이하고 있다.그렇다면 내가 나의 자의식과 나의 지혜와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커다란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참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일까?그래서 『격양시』는, 만일 부귀를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공자는 젊은 나이에 제후가 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
나의 생각을 투명하게 깍았습니다. 감동은 관심의 아름다운 기록입니다. 관심은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따로 걷고, 때로 느끼고 때로 침묵하는 내 삶은 이제 물이되고 햇살이 되는것 만 같습니다. 저 멀리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맑은 하늘은 봄바람을 보냅니다. 청아합니다. 마치 맑은 하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서 청아한 바람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삶에 더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맑은 하늘처럼 나는 두팔을 벌리고 하늘이 내게 보낸 이 청아한 봄바람을 어디론가 다시
공기가 투명하지 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투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분홍색으로 보인다. 겨울은 지났는가? 꽃샘추위여서 아직 바람은 쌀쌀하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아직 겨울의 옷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만일까? 정말로 겨울은 지났는가? 봄은 꼭 예술가의 손과 같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꿔놓는다. 마치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처럼 봄은 묵은 것, 새것을 뒤바꿔놓고 여기저기 꽃을 심어 놓는다.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惡靈)’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나게 된다. “인생은 고통이며 공포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행하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미국의 정치. 사상. 과학 분야에 너무나도 많은 업적을 쌓은 벤자민프랭클린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친구가 벤자민의 손을 잡아끌며 지름길을 알려 주었다. 그는 친
매화는 고금을 통해 동양에선 시선이나 묵객들의 칭송을 받아온 꽃이다. 또 중국은 한 때 모란대신에 매화를 국화로 삼았던 일도 있었다. 모란의 농염보다는 매화의 랭염이 훨씬 선비답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동양인의 은근한 성미엔 매화의 향기에 더 마음을 준다. 사군자가운데 매화를 으뜸로 치는 것도 그런 은근함에의 매력때문일 것이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도 매화를 노래한 일이 있다.『때를 씻고 씻어 흰 살더미가 보이네 가슴에 맺힌 마음, 말끔히 사라졌네(매화).』그런감상은『매천부』를 읊은 정도전의 마음에도 이어지는 듯, 그는 매화를 이
구정(舊正)은 명절(名節)인 것이다. 고향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리워지는 날인 것이다. 2중과세(二重過歲)라고 흉봐도 좋다. 그러나 아직도 구정이라야 참다운 설날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찌하랴.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예 같으면 오늘 벽사(辟邪)의 예방으로 세화(歲畵)와 문배(門排)를 집집마다 달았다. 골목에서는 윷놀이와 뛰기에 흥겨운 아낙네들의 교성들이 가득찼을 것이다. 그리고 보름이면 어린이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날밤, 호도, 은행, 잣 들응ㄹ 깨물며 즐거운 밤을 보내고......,이렇게 기쁨과 흥겨움으로 포근하게 마음을 감
범종(梵鐘)소리를 들어 본 지 오래다. 도회지에 묻혀 살면 소음(騷音)이 섞이지 않은 청음(淸音)을 듣기란 참으로 어렵다. 또 이웃엔 그런 종소리를 들려줄 사찰도 없다. 암자(절)가 있어도 종다운 종이 없다. 얄팍하고 경박한 종소리는 오히려 듣지 않은 것만 못하다.서울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타종행사를 TV로 중계했다. 그 타종음은 재생음(再生音)이라 생생한 자연음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해의 마지막 초침이 움직이는 순간에 불을 끄고 TV속의 범종소리나마 듣는 감회는 여간 아니다. 범종은 인도 혹은 중국에서 전해졌다
좋은 사진은 지식과 응용력, 그리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사진 또한 아는것과 행하는 것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말로만 하는 사진가는 수십년 동안 사진을 해도 늘 똑 같은 결과물만 찍어낸다. 그러므로 원칙과 실습이 함께 해야 한다. 지난 25일 용눈이 오름의 설경.눈이 내렸으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해질무렵 여행자가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있다. 종일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기에 걷기 불편한 길이었다.그러나 불편한 길을 스스럼없이 걸어가는 여행자는 어쩌면 그 불편함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올 한해...고마웠습니다.. 삼백 예순 날, 달력 켜켜이 고인 추억들, 누런 갈피에 펄럭이는 노여움. 서랍 속에 가두고 새날의 방치로 못질 한다.그저 건강하게, 그저 맘고생 없게.『금정신문』은 '새 뉴스'로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독자와 대화를 나누려 했다. 되도록 독자와 함께 호흡을 하고 커피 한잔의 휴식과 사색을 안겨 줄 수 있도록 마음을 썼다. 돌아켜 보면 송구스러운 느낌이 없지도 않다. 『금정신문』의 년륜도 머지않아 40년, 그동안 실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되도록 양식있는 눈』으로, 『되
바다를 거닐며 새해는 이렇게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올해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아 보는 겁니다.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다시 지고 피는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겁니다. 그럴 나이가 됐습니다.세월은 가고 옵니다. 간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고, 온다는 것은 추억과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찾아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나’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나’라는 의식은 부분에 집착해 전체와 언제나 대립하게 했습니다.나는 전체 앞에서 작고 작았지만 그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득 찬다는 것은 융성함의 절정, 풍요함의 극치를 이르는 말이다.또 물성 즉쇠(物盛則衰)라는 말도 있다. 무슨 사물이든 극히 융성하게 되면 반드시 쇠퇴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득차면 넘친다고 하는 것이다.물도 그릇에 가득 차면 넘친다. 불길도 활활 가득 타면 마침내 꺼진다. 뜨거웠던 사랑도 어느새 식기 마련이고, 돈도 명예도 권력도 가득 차면 이윽고 기울어진다.그래서 십년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했다.옛 선인들은 명예나 지위가 극도로 귀하게 되는 것을 꺼려했
8일은 입동, 동장군(冬將軍)께서 조용히 기동하신다.벌써 겨울이 다가왔을까? 가을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일까? 늦게까지 단풍을 자랑하던 설악산에서도 관광객들이 떠난지 오래된다.이제는 어디서나 낙엽뿐, 아직도 미련스럽게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들은 모두가 노랗게 퇴색된 채 달랑거리고 있다. 이른 아침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투명한 공기속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는다.이미 겨울인가. 가을은 영 떠나 버린 것일까. 지난해 동장군은 온 천하를 꽁꽁 얼어붙여 놓은 채 온갖 맹위를 떨쳤다.서민들의 마음까지도 얼려 놓을 듯이 겨우내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뇌면 ‘그리운 사람’이 먼저 더 그리워지는 계절, 단풍(丹楓)곱던 플라타너스(platanus) 이파리가 발끝에 와 버석거리면 오가던 옛 사랑과 마주 칠 것만 같다. 다시 서로 먼 길 떠난대도 이승의 기록에서 그리운 사람을 다만 한 번이라도 만나면 오죽 좋으랴.이 가을날!그리움이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살아가며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물다든 가로수 잎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면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리 살수 있으랴. ‘어이, 정치(
제주 '용눈이 오름- 마치 용이 누워 있는 것 같은 모습의 오름, 도로변에 손자봉과 이웃해 있다. 향유화가 붉게 핀 가을 철이 제격이지만 오름기행의 맛인 '정상에서 경치를 즐기기'에는 사시사철 좋은 곳. 오른쪽으로는 성산일출봉, 왼 쪽끝으로는 우도가 보이고, 그너머로 바다가 확 트여있다.이 가을, 용눈이 오름 모습은 산수화의 오름이 아니라 베토벤의 교향곡의 폭발적인 환희의 모습에 흡사하다. 억새가 휘날렸다. 멀리 안개가 자욱한 길에 가로눕는 이슬밭, 산국화 꽃 빛으로 돈다.'용눈이 오름은 시간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체력이요?
문호「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에 묘사된 가을하늘은 인상적이다. 「나폴레옹」은 군에 쫓겨 중상을 입은「러시아」군의 병사「안드레이」는 문득 의식을 되찾고 눈을 뜬다. 1850년 11월 「앤스」강에서도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가을 하늘도 맑은 가보다.『아, 이 얼마나 조용하고 장엄하냐! 나는 왜 이때까지 이를 깨닫지 못했을 까. 아니다. 지금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그렇다. 이 하늘 말고는 모두가 거짓이다...』「안드레이」의 눈에는 그 때 전지를 시찰 나왔던 상승의 적장
상사화가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잎이 나면 꽃이 없고 꽃이 피면 잎이 없어 잎과 꽃은 늘 그리워 할 뿐 만나지를 못합니다. 만나지 못한 그리움이 붉은 색으로 피어올라 대기를 태웁니다. 짙은 그리움 앞에 대기도 가슴 태우며 눈시울을 적시며 태웁니다.상사화 피어난 둔덕길을 걸으며 얼마를 살아야 세상 모든 것의 그리움이 사라질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나지 못한 회한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다시 회한이 되는 이 그리움의 윤회를 상사화는 언제쯤 끊을 수 있을 까. 하지만 상사화에게 타는 그리움이 없다면 그 무엇을 일러 상사화라고 할 수
# 몸이 예전 같이 않다. 찌푸득한 날씨에 감기 기가 있어 '바흐'를 들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왜 이리 국회의원들이 국민들 마음을 괴롭게 하나?를 골똘하게 생각하며 평소 '정치인'에 대한 상식을 글로 쓴다. # 政治가 이를 데 없이 부패했던 18세기 영국에선 ‘죽은 정치가의 解剖(해부)라는 소화(笑話)가 유행했었다. 해부를 끝낸 의사 A는 ‘뇌(腦)가 썩어 있더라’고 말했으며, 의사 B는 ‘머리를 너무 정치에 부딪쳤기 때문에 골막(骨膜)까지 산해 있더라고 했고 의사 C는 ’가슴에서는 ‘국가멸망’이란 소리가 들렸고, 장(腸)에서는
정치는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크는 것이다.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겪어야 하는 온갖 구설과 비판을 이겨내야 한다. 이 시점에 이런 칼럼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수(금정구)가 화합해야 한다. 불협화음을 정치지도자들이 ‘내몰라’고 하는 것 같다. 어쩌튼 전 국회의원과 현 국회의원이 ‘말로가 아닌 진실’로 화합하고 화해가 시급하다. 화합과 화해는 칼을 쥔 사람이, 권력을 지닌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한번 낙선한 정치인은 당의 공천을 받기가 어렵다. 특별한 공로로 인정하지 않는 한 그렇다. 상식화 된 이야기다. 흘러간 물로 물
살다보면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작정 길을 떠나면 마음에 얽혀있는 것들이 모두 사라져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그 순간 나는 나를 생각해 봅니다. 바랄 것도 더 잃을 것도 없는 나는 저녁마다 제 그림자만 데리고 누울 곳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에 그리 얽혀 있는지, 왜 삶이 이렇게 적체의 한가운데 있는 것 인지.살아가는 것이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구속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여행이 필요한 순간들입니다.여행은 넓은 세상을 단순하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여행은 넓은 세상 속
말이란 시간의 흐름과 함께 크게 달라진다. 그 뜻이 달라지는 것도 물론이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령, 우리가 흔히 쓰는 명구에‘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게 있다. 예술가의 일생은 짧지만 그 가 남긴 작품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뜻이다.그러나 이 말을 제일 먼저 했다는 ‘히포크라스테스’는 그런 뜻으로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람의 일생은 짧고 기술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타일렀을 뿐이다.오래전 중국 신강성(新彊省)에서 발굴된 당대 초기고문에서 논어의 이른바 ‘정현(鄭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