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베풀어 주는 혜택을 사람들은 은혜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거나 물질적인 것이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은혜를 항상 우위에 둔다. 정신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은혜를 베푸는 사람과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의 감정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일 수록 그 사실을 의식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또 혜택을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다.「괴테」의 말을 빌려 온다. "자기가 은혜를 베푼 사람을 만나면, 곧 그 일을
총선을 앞두고 운명을 생각한다. 운명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참다운 의미는 무엇일까?운명이란 사람에게 닥쳐 오는 모든 길흉화복, 또는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큰 힘이라고 「국어사전」을 풀이하고 있다.그렇다면 내가 나의 자의식과 나의 지혜와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커다란 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참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일까?그래서 『격양시』는, 만일 부귀를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공자는 젊은 나이에 제후가 되고도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
오늘의 춘분이라지만 아직도 아침 바람은 제법 싸늘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겨울을 끼고 있기는 봄이나 가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봄의 평균 기온은 가을보다 10도 가량이나 낮은 게 보통이다.그래도 봄이려니 하고 기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봄의 시에는 어딘지 모르게 너그러운 데가 있다. 같은 사랑의 시라도 가을에는 실연을 주로 하고 봄에는 사람의 설렘임을 노래한다. 정호승 시인이 시 '꽃을 따르라' 를 빌려온다. /돈을 따르지 말고 꽃을 따르라. 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 봄날에 지
나의 생각을 투명하게 깍았습니다. 감동은 관심의 아름다운 기록입니다. 관심은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따로 걷고, 때로 느끼고 때로 침묵하는 내 삶은 이제 물이되고 햇살이 되는것 만 같습니다. 저 멀리 일망무제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맑은 하늘은 봄바람을 보냅니다. 청아합니다. 마치 맑은 하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서 청아한 바람을 만나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삶에 더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맑은 하늘처럼 나는 두팔을 벌리고 하늘이 내게 보낸 이 청아한 봄바람을 어디론가 다시
공기가 투명하지 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투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분홍색으로 보인다. 겨울은 지났는가? 꽃샘추위여서 아직 바람은 쌀쌀하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아직 겨울의 옷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만일까? 정말로 겨울은 지났는가? 봄은 꼭 예술가의 손과 같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꿔놓는다. 마치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처럼 봄은 묵은 것, 새것을 뒤바꿔놓고 여기저기 꽃을 심어 놓는다.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惡靈)’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나게 된다. “인생은 고통이며 공포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행하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미국의 정치. 사상. 과학 분야에 너무나도 많은 업적을 쌓은 벤자민프랭클린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이웃마을에 사는 친구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친구가 벤자민의 손을 잡아끌며 지름길을 알려 주었다. 그는 친
매화는 고금을 통해 동양에선 시선이나 묵객들의 칭송을 받아온 꽃이다. 또 중국은 한 때 모란대신에 매화를 국화로 삼았던 일도 있었다. 모란의 농염보다는 매화의 랭염이 훨씬 선비답게 생각되었는지 모른다.동양인의 은근한 성미엔 매화의 향기에 더 마음을 준다. 사군자가운데 매화를 으뜸로 치는 것도 그런 은근함에의 매력때문일 것이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도 매화를 노래한 일이 있다.『때를 씻고 씻어 흰 살더미가 보이네 가슴에 맺힌 마음, 말끔히 사라졌네(매화).』그런감상은『매천부』를 읊은 정도전의 마음에도 이어지는 듯, 그는 매화를 이
구정(舊正)은 명절(名節)인 것이다. 고향이 생각나고 가족이 그리워지는 날인 것이다. 2중과세(二重過歲)라고 흉봐도 좋다. 그러나 아직도 구정이라야 참다운 설날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찌하랴. 문화로 정착한 것이다.예 같으면 오늘 벽사(辟邪)의 예방으로 세화(歲畵)와 문배(門排)를 집집마다 달았다. 골목에서는 윷놀이와 뛰기에 흥겨운 아낙네들의 교성들이 가득찼을 것이다. 그리고 보름이면 어린이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날밤, 호도, 은행, 잣 들응ㄹ 깨물며 즐거운 밤을 보내고......,이렇게 기쁨과 흥겨움으로 포근하게 마음을 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천해 보이던 사람도 지위가 생기면 의젓해 보인다는 게다. 이처럼 세태는 변덕스럽고 영악하다. 정승 집 강아지가 죽으면 문상을 가고 정승이 죽으면 모른 척 하는 것이 이해타산이다. 사람과 사귈 줄을 잊은 지 오래돼 왔다. 지위를 사귀고 명성을 사귀고 돈을 사귄다. 지위를 누리는 동안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명성을 날리는 순간은 사람들이 자자하고 돈이 많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찾아와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그런 것 들이 떠나고 나면 찾아 들던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버린다. 군자는 어울리고 소인은 패
우리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 물갈이를 한다. 각 정당은 총선을 앞두고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를 예고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초 긴장시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올바른 정치를 하며 지역 주민들 생활에 편익을 주는 정책으로 정치를 했으면 물갈이 같은 것은 아예 생각치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좀해서 경쟁을 할 후보도 없을 것이다. 상식적인 이야기다.그런데, 국회의원에 당선만 되면 자기가 일꾼이여서 당선되었다고 믿고 목을 곧추 세우고 한량 짓만 한다. 지역구 각 행사 때마다 나타나 먼저 인사를 하고 악수를
“돌아 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순 있어” 세상의 먼지보다 마음의 먼지가 무섭다.뭔가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그게 뭔지 알아냈습니다. 어떤 지도자가 회빈작주(回貧作主)로 눈살을 의심케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이래도 되는 것인지 본인은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주민들 여론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주위에 그를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은 입 다물고, ‘괜찮습니다.’ 말 하는 것 같습니다. 여론을 비웃듯 하는 겁니다.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의 참담한
총선이 다가오며 문제의 변두리만 뱅뱅도는 바람에 격화소양(隔靴搔癢)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공중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사말적(些末的)인 자기판단에 대소사를 시시콜콜히 찾아나서는...,자기에게 유리한 행동만 속아내는 짓 꺼리만 한다.’쇠 작때기 휘두르는 곳에 표가 있을 까.’ 그만큼 표와 지지행동 거리가 멀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아니! 놀랍다. 총선에 거론되는 자들 볼 때, 주민을 위해 무엇을 했나? 본인은 모르지만, 주민들이 볼 때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모르는 것 일까.그래
범종(梵鐘)소리를 들어 본 지 오래다. 도회지에 묻혀 살면 소음(騷音)이 섞이지 않은 청음(淸音)을 듣기란 참으로 어렵다. 또 이웃엔 그런 종소리를 들려줄 사찰도 없다. 암자(절)가 있어도 종다운 종이 없다. 얄팍하고 경박한 종소리는 오히려 듣지 않은 것만 못하다.서울 보신각에서 제야(除夜)의 타종행사를 TV로 중계했다. 그 타종음은 재생음(再生音)이라 생생한 자연음과는 물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해의 마지막 초침이 움직이는 순간에 불을 끄고 TV속의 범종소리나마 듣는 감회는 여간 아니다. 범종은 인도 혹은 중국에서 전해졌다
좋은 사진은 지식과 응용력, 그리고 창의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진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사진 또한 아는것과 행하는 것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말로만 하는 사진가는 수십년 동안 사진을 해도 늘 똑 같은 결과물만 찍어낸다. 그러므로 원칙과 실습이 함께 해야 한다. 지난 25일 용눈이 오름의 설경.눈이 내렸으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해질무렵 여행자가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있다. 종일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기에 걷기 불편한 길이었다.그러나 불편한 길을 스스럼없이 걸어가는 여행자는 어쩌면 그 불편함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올 한해...고마웠습니다.. 삼백 예순 날, 달력 켜켜이 고인 추억들, 누런 갈피에 펄럭이는 노여움. 서랍 속에 가두고 새날의 방치로 못질 한다.그저 건강하게, 그저 맘고생 없게.『금정신문』은 '새 뉴스'로 365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독자와 대화를 나누려 했다. 되도록 독자와 함께 호흡을 하고 커피 한잔의 휴식과 사색을 안겨 줄 수 있도록 마음을 썼다. 돌아켜 보면 송구스러운 느낌이 없지도 않다. 『금정신문』의 년륜도 머지않아 40년, 그동안 실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되도록 양식있는 눈』으로, 『되
바다를 거닐며 새해는 이렇게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올해는 나를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아 보는 겁니다.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때가 되면 다시 지고 피는 꽃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겁니다. 그럴 나이가 됐습니다.세월은 가고 옵니다. 간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고, 온다는 것은 추억과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찾아온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나’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나’라는 의식은 부분에 집착해 전체와 언제나 대립하게 했습니다.나는 전체 앞에서 작고 작았지만 그
문득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에 하얗게 뜬 반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비추는 추억 한 조각. 가슴에 품어 봅니다. 딱딱한 자판 위에 얹힌 글자로는 차마 전할 수 없는 얘기들.그 얘기들을 낙엽에 실어 띄웁니다. 그대도 지금 낙엽을 보고 있는지요. 바람을 헤치고 그속의 그리움도 꺼내 읽는지요. 선출직은 정직해야 한다. 늘 이 난을 통해 '정직'을 지적해 오고 있다. 혹시 그대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그대가 '난 사람' 이 된 것은 그대의 노력도 아니고, 바로 공당이다. 그래서 공천으로 선출직에 당선된 것 이다.그
낚시 제목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젊은 열정으로 정치하던 시대의 그대가 생각나서 입니다. '말은 곧 행위이다. 어떤 목적일자라도 거짓말은 결코 정당화 할수 없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고자 할 때는 매우 강하지만, 인간보다 높이 되고 싶어할 때는 참으로 힘 없는 존재가 된다. 사람은 겸손할 수록 자유롭고 강하다.'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을 그대에게 부친다. 이제 세상사 읽혔으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대로 인해 아파하든 사람들이 내년 총선을 내다보고 있다. 허지만 그대는 '아픈 마음'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득 찬다는 것은 융성함의 절정, 풍요함의 극치를 이르는 말이다.또 물성 즉쇠(物盛則衰)라는 말도 있다. 무슨 사물이든 극히 융성하게 되면 반드시 쇠퇴하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가득차면 넘친다고 하는 것이다.물도 그릇에 가득 차면 넘친다. 불길도 활활 가득 타면 마침내 꺼진다. 뜨거웠던 사랑도 어느새 식기 마련이고, 돈도 명예도 권력도 가득 차면 이윽고 기울어진다.그래서 십년세도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고 했다.옛 선인들은 명예나 지위가 극도로 귀하게 되는 것을 꺼려했
8일은 입동, 동장군(冬將軍)께서 조용히 기동하신다.벌써 겨울이 다가왔을까? 가을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일까? 늦게까지 단풍을 자랑하던 설악산에서도 관광객들이 떠난지 오래된다.이제는 어디서나 낙엽뿐, 아직도 미련스럽게 가지에 매달려 있는 잎들은 모두가 노랗게 퇴색된 채 달랑거리고 있다. 이른 아침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투명한 공기속에 동그라미를 그려 놓는다.이미 겨울인가. 가을은 영 떠나 버린 것일까. 지난해 동장군은 온 천하를 꽁꽁 얼어붙여 놓은 채 온갖 맹위를 떨쳤다.서민들의 마음까지도 얼려 놓을 듯이 겨우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