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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상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린 딸아이와의 놀이에 기꺼이 동참할 수 없었다. 주관이 뚜렷하고 예민한 엄마보다, 잠자리에 눕는 대로 코를 고는 스타일인 아빠 쪽이 다섯 살짜리에겐 놀이대상으로 적격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 두어 시간 정도, 자발적으로 아이의 세계에 뛰어든다. 특히 내게도 향수로 남아있는 캐릭터를 공유할 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짙은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5.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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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제발 좀 그만 생글거리지?" 모교가 아니라서 외로움이 짙었던 대학원 시절, 내게만 유난히 까다롭게 대하는 선배가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반문할 겨를도 없이 그녀가 덧붙였다. "너처럼 사는 게 즐겁지만은 않거든." "저는 추억이 많은가봐요." 순간 그리 대꾸하긴 했는데 이후, 영문 모를 그녀의 요구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5.1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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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삼월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 바야흐로 진달래 축제 시즌이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진달래와 철쭉을 명확히 구분할 줄 몰랐다. 어느 해 봄 대견스럽게도 앙상한 가지에 진홍빛 꽃이 매달린 것을 보고 감탄했는데, 잎보다 꽃이 먼저 피었다가 꽃 지면서 비로소 잎이 나는 것으로 철쭉과 구분한다고 설명 들었다. 김소월의 시로 인해서 애절한 사랑의 눈물을 상징하기도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4.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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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점가에서 [어린왕자]가 사라지고있다는 기사 제목만 접하고도 벌써 영혼이 슬퍼진다. 도서 회수의 사태원인은 동화 [어린 왕자]를 대표하는 생텍쥐페리의 삽화 두 점과 한글·프랑스어로 된 글자체의 상표권 때문. 그동안 책 외 각종 문구와 완구, 의복, 병원 간판 등에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고 사용해온 한국의 관행을 생텍쥐페리 유족 재단에서 정식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4.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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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에서 생쥐 머리가 나왔다는 것을 다섯 살 딸아이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란 쉽지 않았다. 가급적 인스턴트식품이나 과자류의 섭취를 절제시키면서, 외려 내가 그 맛이 간절할 때가 있어 한 봉지에 손을 같이 집어넣고 즐겨온 스넥이다. 내 나이와 얼마 터울도 없는 국민스넥 새우깡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 때문에 화가 치솟았는데, 딸아이가 등을 다독이면서 위로했다.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3.2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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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거북을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 지 팔 개월이 넘었다. 애완(愛玩)의 즐거움을 마음껏 공유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딸아이 탓에 털 날리는 동물은 천식을 유발할 위험이 있고 등등, 이것저것 따지다가 결국 선택한 것이 거북이다. 두 녀석의 성격이 정반대라서 하루에도 몇 번씩 밀고 당기며 쌈박질을 하는데, 늘 승리는 매사 적극적이라서 "빠샤"라 이름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3.1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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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 차가운 눈 소식을 들었는데 설핏 꿈속에서 화사한 홍매화를 보았다. 그리고 그 날 종일, 당장 꽃과 만날 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까워 몸서리를 쳐야했다. 위로가 된 것은 퇴계 선생의 지극한 매화사랑이 담긴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라는 제목 아래 여섯 편의 시였다.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쫓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2.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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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수도의 숭례문이 다섯 시간 화재 끝에 결국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다가 결국 혼이 빠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잿더미가 된 국보 1호를 보게되자, 눈물이 저절로 솟구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서울시민처럼 가까이서 자주 접한 것도 아닌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뻐근하고 살이 아프다. 이유는 오직 한국인만이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2.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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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성적으로 행복하기를 소원한다. 사랑을 정의하는 수많은 명제가 이율배반적임을 깨닫고 경험하면서도, 사람은 다시 또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고싶다며 "신앙이 있느냐"고 물어올 때 대답하기가 다소 난감하다. 당신이 신을 사랑하고 공경하듯, 내게도 두렵고 소중한 사랑의 대상이 있다. 나는 과연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2.0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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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제법 겨울다운 추위가 닥쳤다. 강원지역엔 폭설로 사고가 다반사라 하더니, 눈이오나 비가오나 산타기를 좋아했던 지인의 비보가, 첫 눈보다 먼저 부산에 와 닿았다. 젊어서 가버린 그가 안타까워서일까. 일기예보를 접하고도 예정대로 등산을 나섰던 그를 두고 주변에선 실성한 사람 취급했다. 그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 잘 아는 나와 같은 이들도 급작스러운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1.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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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줄만 알았던 하늘 겨울 견뎌내기 시렸나, 외로웠나 땅 가까이 내려앉았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안개 싸늘하게 식은 가지를 휘감으며 끝마다 투명한 방울을 달아준다. 찬바람에 몸을 떨던 추억은 잿빛으로 젖어들며 이제 그만 유랑할 수 없는 체념을 배우고 오래 참아왔던 한숨 같은, 적막을 깨우는 저 나직한 소리 물 속 같은 숲에 겨울비가 내린다.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1.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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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푸쉬킨의 시처럼 조선 중엽 이후 수백 년간,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에서 삶을 위로 받아왔다. 태어난 년도와 달, 일, 시각으로 한 해의 신수를 판단하는 이 술서(術書)의 저자 이지함 선생은 청렴한 생활을 이어가며 선정을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1.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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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국도가 시작되는 지점 정도에 내가 유난히 즐겨 찾는 바닷가 "일광(日光)"이 있다. 삶이 참 어지간히 분주하지만 짬을 내어서 찾을 때마다, 언제라도 여기서부터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돌아설 수 있어 좋다. 그리고 거기, 단골 찐빵집이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로 하여금 잘 먹지 않던 찐빵 마니아가 되게 한 가게가 있다. 한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8.01.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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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내 캐릭터는 "뽀로로와 친구들"이다. 4살난 내 딸아이도 장난감과 책, 소지품은 물론 과자와 껌도 뽀로로 캐릭터가 찍힌 것만 고집한다. 호기심 많고 모험을 좋아하는 주인공 뽀로로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 딸아이와 달리, 나는 그의 친구들에게 골고루 관심이 많다. 꿈과 성격이 다양한 덕분에 딸아이의 여러 친구들을 연상하기도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2.2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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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물었다. 언제 처음 소설작품을 적었기에 이미 작가이냐고. 스물 두 살에 스무 편쯤 단편을 습작하다 보니 문득 작가가 되어있네, 그리 답하다가 나는 잠시 숨이 멎을 뻔했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나의 작품 한 편을 기억해낸 것이다. 혹시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친정집 창고까지 뒤졌지만 없었다. 분명히 제목은 [화이트 캔디]였고 당시 T.V 에서 방영되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2.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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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목숨 견뎌야 하는 겨울로 들어섰는데 내게도 첫눈이 내리렵니다 그대 가슴속 깊숙이 유혹하는 향기이고 싶었는데 싸늘하게 피는 눈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겹씩 흰 옷 벗을 때마다 추억은 아찔하게 곤두박질 치고 하늘빛 세월 닮은 눈물이 되어 그대 가슴속 깊숙이 스미겠습니다 가파른 세상의 끝에 앉아서 다시 나는 사랑을 찾겠습니다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2.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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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모님은 최대한 자유롭게 판단하고 거침없이 나아가도록 가르쳤다. 다만 한가지, 거짓말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 때의 거짓부렁이란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을까 싶다가도,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하던 말씀에는 지금도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행한 것을 하지 않았노라고 시치미를 뗐던 탓에 단단히 혼이 났던 일곱 살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1.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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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가로수 길을 걸으며 [미련 없는 사랑의 연주]를 감상한다. 꿀처럼 달콤한 향기를 주던 아카시아로부터 노란 낙엽이 흩날린다. 은행을 주워담아 윤나게 볶아서 한 알 깨문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황금빛 낙엽으로 떨어진다. 순백의 신부같았던 벚나무도 붉은 단풍으로 낙엽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이들의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1.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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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I.C에 내리니 단풍이 감빛이었다. 25번 국도를 타고 송금리에 가까워질 수록 달큰한 감내가 짙어졌고, 대문 열린 마당마다 반시, 연시가 담긴 박스가 즐비했다. 사방천지가 주홍색이니 그 발랄함에 물들어서 낯이 상기된 채 장대를 들고 두어 시간 설쳤다. 송금리에 위치한 대천성공 명치삼십칠년 (代天成功 明治三十七年)"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터널은, 일제강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1.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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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살 가을이었다. 바람에 쇠똥 구르는 것만 보아도 자지러지게 웃을 나이라고도 하고, 면식 없는 자의 죽음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 할 수 있는 시절이기도 했다.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 아래 정수리를 모으고 도시락을 먹고있을 때, 교내 음악방송실에서 가수 김현식의 비보와 [사랑했어요]라는 곡이 흘러나왔다. 당시엔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잘 알지 못하는
무지개를 완성하는 보라
이보라
2007.11.03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