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정적을 뚫고 햇살을 지을 무렵, 무지에 가까운 만큼 피상적인 사실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괴테는 '정치는 운명이다'라고 했습니다. '운명으로 정치하는 분들이 있을 까요? 글쎄요. # 글을 쓰기전에 마음 정리하는 시간이다. 촛불을 켜 놓고 편한 자세로 아무 생각없이 기대앉아 있으면 아주 좋다. 텅빈 상태에서 어떤 메아리가 울려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오신 날, '바흐'를 듣습니다.느낀 감정을 들으면 들을 수록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음악은 고뇌하는 사람에게 밝은 내일이 오도록 희망을 주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인도(印度)는 낯설지 않은 나라이다. ‘세계문화사’를 펼쳐보면 어느 저자의 책이든 ‘인더스’ ‘갠지스’강 유역의 찬란한 문화가 서술되어 있다.그것은 인류문명의 고향인 셈이다. 이 역사의 동녘이나 다름없는 인도가 어딘지 ‘인간가족’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은 웬일일까.인도인의 인상은 반라의 ‘간디’상을 연상하기 쉽다. 그 것은 기름지고 유들유들한 그런 모습은 아니다. 고난과 시련에 찬 성자의 모습이며 고행하는 수도자의 상이다. 인도인은 그처럼 검소하고, 상적이고 또 인간적이다.고 ‘J.네루’(전 인도수상)는 ‘고뇌와 수난(
초파일을 앞두고 범어사에 연등이 환하게 달렸다. 연등은 사바세계의 어둠을 밝혀주는 데 그뜻이 있다. 연등은 불교에선 부처님의 지혜가 밝은 것을 뜻한다. 그래서 법당이나 그 주변엔 등용이 있게 마련이며, 이것은 불타의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을 등불을 높이 처들어야 보이는 존재는 아니다. 불타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청정한 불성을 스스로 찾으라는 것이다. 그 말은 등불을 밖에 켤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속서 켜라는 뜻도 된다.우리가 마음 속을 환희 밝혀주는 등불을 저마다 켤수 있다면 열반의 경지를 멀리
맑은 날입니다. 맑다는 것은 구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름 없는 하늘은 매우 투명해 눈이 부시기까지 합니다. 비움이 좋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비워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그 비워 버린 것의 내용은 내가 홀로 존재한다는 그릇된 생각입니다. 아무것도 홀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비어있다고 말합니다.그러나 그것은 또한 모든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진 조화가 바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오늘 맑은 하늘을 보면서 하늘 속에 내가 있다는
지인들에게 욕 먹을 작정으로 이글을 쓴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게 된다. 하늘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경구 입니다.〈마태복음〉27장 46절에도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라"고 되어 있다. 총선이 다가오며, 꼽사리가 심하다는 전언이다. 꼽사리는 남이 노는 판에 거져 끼어드는 일을 뜻한다. 유식한 척하지만 무임승차. 더 근사한게는 무임승차의 영어표현인 프리라이더(Freeride
시인은 허풍을 잘 떤다. 『5월이란 젊음과 사랑과 노래와 그리고 삶 중에서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뜻한다.』 이렇게 노래한 「롱펠로」도 허풍장이였나보다. 그렇치 않으면 「롱펠로」시절의 5월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찔레꽃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 소냐. 이때를 승시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이렇게 꽃을 보고도 가뭄 걱정을 하게 되던 것은 험상스런 우리네 자연의 탓이었는지, 또는 웃음보다 눈물로 지새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버릇에서 나온 것인지, 알뜰하고 근면해서만은 아니다.「롱펠로」에게는 5월이란 마냥 즐겁고 아름답게만 보였
노인들은 살아생전에 아들딸들이 결혼하기를 소망한다. 결혼한 자녀들을 보면 이번엔 또 후손까지도 보고 싶어 한다.이제 할아버지는,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어린 손자의 모습을 보며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의 화신이 재현된 듯한 감회에 젖을 것이다.손자의 손을 만지며, 혹은 뺨을 비비며 노인을 정말 자신의 혈육이 이처럼 생명감에 넘쳐 다시 꽃피고 있는 것에 감동할 것이다. 이것은 평범하지만 더 없이 감동적인 인간‘드라마’다. 인류는 오랜 역사를 두고 이처럼 아름다운 ‘생명의 흐름’을 보아왔다.인간은 어린 시절, 청년, 그리고 성년시대를 이
도청(盜聽)을 영어로는 속칭 ‘버깅(bugging)이라고 한다. bug에서 비롯된 말. 빈대라는 뜻. 무시(無時)무소(無所)로 스며들어서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불쾌한 미물(微物)을 도청장치에 비유한 것이다.요즘 미국정보기관이 동맹국인 우리나라 등 도청했다는 의혹제기가 잇따르며 아직도 그 사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시원한 대답이 없어 국민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역신문이기 전에, 우리 자존심을 뭉게는 사건이므로 한마디 하고자 한다.그리고 윤대통령 미국방문에 앞서 출국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행동도 불쾌감을 갖게 했다. 도대
변호사는 매력 있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정의를 옹호하는 그의 명쾌한 웅변은 많은 사람의 이망을 자아낸다. 그는 또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다.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주며, 권리를 잃은 사람에게 그것을 찾아주며, 불안과 공포에 빠진 사람에겐 평안과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초조한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의사나 성직자의 경지를 생각하게 한다.따라서 변호사는 남다른 품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올바른 양심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민주주의의 전통국에선 변호사라는직업을「트레이드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기가 자신의 한 몸에 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명예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남들이 몰라주면 가슴을 조이거나 화를 내거나 아니면 너무한다고 남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잘못된 것은 모조리 남의 탓이고 잘되면 내 덕이라는 이기심이 비롯된다.나만 잘났다고 앞세우면 세상 사람이 모두 벗으로 보이기 보다는 상대로 보이게 되고, 상대로 보이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대립의 관계로 보이거나 다투어야 될 경쟁
나이 팔순(八旬). 또 팔질(八耋)이라고도 한다. 팔순이 되니 할미꽃이 생각난다. 그것도 제주 ‘용눈이 오름’, 봄이면 파릇파릇 새 생명이 속삭일 때 등 곱은 할미꽃은 머리에 백발을 흩날리는 늙은이처럼 생명을 다하려 바람에 흩날린다. 그래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도 일컬었다.이 나이드니, 이젠 글 한줄 말 한 마디도 조심하게 된다. 내 직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매일매일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가다듬는다. 훌륭한 어른은 못 되더라도,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사람은 변한다. 세월이란 이 몹쓸 것은 안타깝게도 사람을 변
돌아가고 싶어. 그 풍경 속으로. 카메라들고 포인트 찾던 그 시절, 눈에 들어온 그 호수, 그 옛날 호수는 아니다. 세월이 바꿈질 했는데 어수선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길엔 그래도 벚꽃으로 환해진다. 떨고 있군요. 숨기지 마세요. 그대 가슴에 신열을 끼얹는 봄, 그냥 받아들여요. 당신 곁엔 또 다른 누가 있잖아요. 저 벚꽃이 온몸으로 껴안은 저 화려함을 보세요. 햇살까지 부러뜨리는 무서운 힘을.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지요. 와와, 화사한 벚꽃. 이 작은 평화, 햇살 한줌 없이도 왈칵 목메이는 봄.(작업
해운대 달맞이길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잎들이 벌이려는 모습에서 늙음을 봅니다. 입을 꼭 다물고 있었을 때는 화사한 입술과이 새콤한 생명이 기운이 느껴졌다면 만개를 지나버린 벚꽃이 모습에서는 애잔한 생명의 흔적들을 만날 뿐입니다.생명은 피고 시들고 사라지면 또 다시 찾아옵니다. 그 어느것도 생명의 바다를 떠나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의 바다는 무한이고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고감을 슬퍼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오늘 벚꽃이 사라져도 또 다시 내년 봄이 되면 화사한 벚꽃의 모습을 찾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벚꽃길에는 그 아름답던 꽃
春分이라지만 아직도 아침 바람은 제법 싸늘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겨울을 끼고 있기는 봄이나 가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봄의 평균 기온은 가을보다 10度 가량이나 낮은 게 보통이다.그래도 봄이려니 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봄의 詩에는 어딘가 모르게 너그러운데가 있다.같은 사랑의 詩라도 가을에는 실연을 주로하고 봄에는 사랑의 설레임을 노래한다. 이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東洋의 시인들은 같은 봄이라도 무조건 반기지는 않는다. 어딘가 애수(哀愁)의 눈으로 봄을 보
# 우리 국민과 밀접한 관계는 두 말 할 것 없이 정치다. 정치가 잘되야 사회, 경제, 문화 등 이 발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편히 살 수 있다. 그러면 정치는 누가 하는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주민)들이 뽑은 대표들이 한다.권력을 주민들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국민(주민)들 여론을 잘 듣고 살펴 보편 타당한 합리적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그렇치 않다. 당선 되면 자기가 제일인 줄 알고 겸손할 줄 모른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다. 선출직들 거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 옛날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다 후르시
주역에 '이상견 빙지"라는 말이 있다.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친다는 뜻으로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한 예언이다.내년 총선을 놓고 국힘 공천 후보자들이 물밑 운동을 하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도 열심이고, 또 공천을 받으려는자도 열심이다. 이들 모두 다 귀중한 금정구 자산이다. 정치지도자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국힘 공천 희망자는 이 점을 잘 분석하고 눈여겨 봐야 한다. 이번 국힘 당대표 선거결과 김기현 52.9, 안철수 23.3 천하람 14.9. 황교안 8.72%.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제주에서 이 글을 씁니다. 봄이 먼저 찾아오는 곳 제주, 풀들이 솟아 오릅니다. 바람의 끝을 슬쩍 당겨 본다. 저만치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 버들피리 입에 물고 온종일 쏘다니던 햇빛 벌판, 필리리 필리리, 연두빛 파문, 풀물들어 싱싱하던 가슴, 잊어버렸는가. 그리움 얼마나 더 익어야 푸른 빛 돌까. 휑한 가슴엔 더운 바라만 불고.... 공기가 투명하지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미세란 놈과 모든 것이 보얗게 보인다.흙을 밀치며 다툼하는 풀잎도 흐느낍니다. 그대의 외로움이 더 외롭게 보입니다. 문득 사람이 그립습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물결이 들고 나는 자리에는 모래 언덕이 생겼습니다. 그 모래 언덕에 앉아 나는 바다 물결을 느낍니다. 오래 바다를 느끼다 보면 바다 물결은 또 다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누군가 외로워서 왔을 이 바다. 그리고 이별 그 이후의 아픔을 버리려 왔던 바다에는 그 한 줌 마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의 슬픔은 이미 슬픔의 물결은 아닙니다.모든 것이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에서 슬픔의 물결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에서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따뜻함은 하나가 되어
'때를 알고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에는 어떤 성숙함이 있습니다.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마음을 조급하게 닦달하지 마십시오. 때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다 인연이 도래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기다리는 마음,그 마음에는 세상의 순리가 담겨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사람은 때로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고는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절망이나 낙담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정구에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한번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추위가 다시 오더라도 봄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것' 처럼 금정구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어느 선출직에 대한 비호감이 상당히 높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보수를 기존 가치로 한다며,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재와 지배력의 유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금정보수(극)을 들이밀며 ’공천 받으면 결국 찍는다’는 정치공학을 일념으로 한다. 그런 결과가 금정의 지금이다.지난 연말을 전후, 모씨가 지위가 높아 TV에 나오며 날 뛸때는 전화 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