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초여름 더위를 식히라고 비가 옵니다. 너무 일찍 온 여름에게 하늘이 그 걸음을 늦추라고 차가운 비가 옵니다. 세상 속도가 빨라지니 계절도 또한 자기 순번을 잊고 성급하게 달려옵니다.초여름인데도 더위가 어느새 다가와 봄의 그 난만한 시간들을 지우고 있습니다. 꽃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초여름을 바라보지만 꽃들은 그 놀란 눈빛을 외면합니다. 어리둥절한 혼란이 지금 계절이기도 합니다.모든 것은 차례와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차례로 피고 질때 생명은 조화로울 수 있습니다. 이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혼돈일 뿐입니다.비가 내립니
내년 6월 지방선거에 금정구청장으로 출마하려는 자천타천(自薦他薦)의 후보감들이 요새 한창 물밑 여론 탐색작업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별의 별 이야기 꽃씨들이 초여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다.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청장 후보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4명, 야당인 국민의 힘 8명 등이다. 부산시장 선거결과에 고무되었는지 야당이 많은 편이다.이참에 지적하고 싶은 사항은 과거 정치권에서 맴돌며 얻은 각종 공개, 비공개정보를 통해 사익을 취한 인물은 더이상 공당의 선거 후보로 나서는 것을 시대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보가 되는 순간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말이 있습니다. 흔히 불교에서 잘 쓰는 말입니다. 한 생각에 삼천가지의 모습의 담겼다는 뜻입니다. 그 삼천 가지의 모습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그곳엔 부처님도 있고 악마도 있고, 품격도 있고, 천박함도 있고, 시끄러움도 있습니다.그 삼천 가지 마음과 모습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그것은 씻을 수 없는 과보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그런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을 봅니다. 후배 도반스님 이야기로 글을 풀어 갑니다. 속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스님과는 상당한 진리와 지혜
옛 선조들의 한가하고 고요했던 모습들을 그려봅니다. 달빛 하나에도 은성한 마음이 되었던 그 사람의 자리, 높은 권력을 준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냇가에 나가 귀를 씻는 그 조용한 기개, 바람 새는 집에 앉아서도 바람 소리를 음미하던 그 자유, 청빈한 삶이 벗이 되었던 그 마음의 풍류에 무릎을 꺾습니다.모두 다 잡고자 소리치고 아둥거리는 것들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버릴 줄 알았던 그 마음의 담백함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마음이 쉬지 않으면 한가하고 고요한 삶은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하고 고
총선을 5개여월 앞두고 있다. 그런데 민심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감마저 든다. 어느 정치인은 민심이 필요했을 때 손잡고 인사했지만 민심의 이반을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민심은 조직뿐만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바뀐다. 참 어려운 일이다. 민심이 그를 보고 '과거를 품 안에 품고 사는데 어찌 민심이 바뀌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실 엉킨 것은 풀어도 노 엉킨 것은 못 푼다’는 말이 실감난다. 짚어보면 '잔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어도 큰일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이다.그 주변
모 ‘공직자’가 “저는 요즘 법정 스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니? 무슨 소리...귀를 의심했다. 이야기 장소가 ‘노장 스님’ 병문안 차 갔다 한 이야기여서 반신반의 했다.'그래 젊어선 책임감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이젠 나이 들어 가며 삶에 여유가 좀 생겨 그러겠지' 라 생각했다. 인격도야를 위해 당연한 이야기여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였다.그 말고 ‘퇴직한 어느 공직자’는 퇴직하고 국내 사찰을 120여(?)곳을 여행한 후 ‘반야심경’ 260자를 붓글씨로 하루에 한번 쓰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이다. 약 5년간(?)썼는데
공기가 투명하지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투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분홍색으로 보인다.겨울은 지났는가? 아직 바람은 쌀쌀하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아직 겨울의 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만일까? 정말로 겨울을 지났는가? 봄은 꼭 예술가의 손과 같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친다.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꿔놓는다. 마치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처럼 봄은 묵은 것, 새것을 뒤바꿔 놓고 여기저기 꽃을 심어놓는다.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봄엔 기억들이
제 발등의 불도 못 끄는 경망스러운 짓거리로 신뢰를 잃어 여론의 뭇매를 맞더니 내년 지방선거가 도래하며 도전을 위한 모양새를 틀고 다닌다는 여론이다. 가관인 것은 흘러간 선거꾼들이 아유자와 의기투합하며 무슨 직에 도전할까하며 고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다닌다는 소식이다. '신뢰 잃은 꾼'들에 빌붙어 들지 말고 앞이나 잘 가렸으면 한다는 게 지역 정가 여론이다. 경계해야 할 인물, 선출직하시다가 낙선한 후 어쩌다 지역에서 감투 쓰고 폼 재드니 다시 선출직 공천 받겠지 하는 속셈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한다.
‘용눈이 오름’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콩닥콩닥 설레는 곳이다. 그러나 2023년도 까지는 관찰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명소로 알려지며 관광객이 찾아들어 훼손이 심각하다는 판단에 제주도가 올해부터 통행을 금지시켰다. 무단으로 오름에 오르다 발각되면 과태료가 2백만원이다. 그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용눈이 오름’ 무단 출입시 ‘과태료 2백만’, 포이에르바흐의 ‘심리강제설’ 이 작용했는지 등산객은 얼씬거리지 않고 약 4백여평정도 주차장도 출입금지로 폐쇄되어 있다.기자는 지난 15일 아침 가랑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용눈이 오름’을 찾
지역 발전과 창조력이 미미 할 때는 『괴짜』가 나타난다. 괴짜가 있어야 지역이 잘 된다는 뜻은 아니다. 「괴짜」란 사회의 상식적인 틀을 벗어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틀을 벗어나면서도 살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이 온순하고 유연하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괴짜」를 포용하는 시대는 먼 옛날 이야기다.「괴짜」는 틀을 무시한다. 그러니까 틀 쪽에서 보면 「괴짜」는 일종의 위험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괴짜」가 버젓이 살아가고 때로는 존경까지 받는다는 것은 거짓된 '신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믿는 것은 지역민들이 선량하
『멀지 않아 생을 마칠 것을 내다보고 인생무상의 대도(大道)앞에 조용히...영원한 진정을...。』 필생의 피와 땀으로 모은 30억원 이상의 사재(私財)를 대통령에 보낸 편지의 첫 머리다. 1975년 이야기다.우리네 주변에서는 돈이면 제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저 욕(慾)뿐이다. 그들은 풍족하게 살고 먹고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다음에도 여전히 돈 모으기 이외에는 여념(餘念)이 없게 된다. 완전히 욕(慾)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그들은 자칫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왜 재산을 자손에게
동백꽃은/ 훗 시집간 순아 누님이/ 매양 울며 보던 꽃/ 감성적 표현이 아닌 그 형상미로도 정말 아름답게 표현했다.고향집엔 고목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가난을 이겨낸 할머님처럼 아름드리로 굵게 자라서, 의구심이 들 정도의 고목이다. 그 동백나무는 고향집 역사를 한눈에 느끼게 한다.동백꽃, 하면 거의 상투적으로 서정주 시인의 시와 함께 그의 고향 전라도 고창의 선운사를 떠 올리는 이들이 많다. 아쉽게도 내게 그곳은 멀기도 멀어 여건이 허락지 않아 인연이 닿아 있지 못하다.고향집 동백꽃, 할머님 이야기이다. 생
오늘(3월7일) 새벽, 꿈을 꾸다 벌떡 일어났다. 고인이 된지 6년이 되는 어른(형님)이 꿈에 나타 난 것이다. 그 어른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다. 기자가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훌륭한 분이었다. ’지도자로서의 판단력과 식견을 상당히 갖추고 있는 어른‘ 이라는 평가를 받던 분이다. 이름은 거명치 않기로 한다.꿈이 내용은 이렇다. 초라한 방에 어른 아들이 나를 데리고 갔다. 비스듬히 누워 있던 어른은 일어나 앉으며 웃었다. 그게 전부이다.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해몽할 수 없다.아침 9시경 어른 댁에 전화를 했다. "형수님, 오늘 새벽
남을 비난하거나 중상하는 말 따위는 흔히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말들은 대개 뒷골목의 시궁창을 드나들면서 슬쩍슬쩍 그와 유사한 사람들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전한다.자기 눈으로 직접 본 일도 사실 여부를 결론짓기가 어려운데 남을 비방하는 말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떠벌리며 뒷골목을 헤맨다. 특히 패거리끼리 술 한잔 놓고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내년 지방선거가 아직 먼데, 사실인지 모르지만, 'A는 의리 때문에 시의원, 그러나 구청장을 탐내고 , B도 열심히 한 척하며 시의원을 공천할 것이다'는 그럴듯한 설이 지역정가에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러셀」의 글에서 읽은 것 같다. 동물의 욕망에 관해서 쓴 글이었다. 짐승에는 식욕, 성욕, 물욕 등 갖가지 욕망과 본능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어떤 욕망의 경우도 스스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돼지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배가 터지도록 먹는 일은 없다. 개는 아무리 예쁜 상대가 있어도 때를 가리지 않고 연정을 느끼는 무절제한 생활은 하지 않는다. 「러셀」이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필경 사람의 경우와 견주어 보라는 심사일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닿는데 없어 결국은 파국의 경지에 이르고
겨울이면 눈 많은 곳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인적 드문 하얀 길을 조용히 걷고 싶습니다.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깊은 추억의 시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어떤 이는 많은 추억을 안고 살고 어떤 이는 많은 원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원망보다는 추억을 안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으면 삶의 어느 시간에 추억이 꽃처럼 피어나겠습니까.사랑도, 이별도, 그리고 아련함까지도 모두 사람의 일입니다. 인생을 살고 또 살아 칠십이 넘는 나이에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 이해하지
만화나 ‘코미디’의 소재에 등장할법한 이야기다. 도둑이 도망을 간다. 그 뒤를 선량한 시민이 뒤쫓아 간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도둑은 자기를 뒤쫓던 사람을 가리켜 도둑이라고 소리친다. 저쪽에서 헐레벌떡 이들을 따라오던 경찰은 그 ‘뒤쫓던 자’를 잡아간다.이 경우 도둑이 만일 선량한 ‘시민’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 어떻게 될까? 명예훼손에 관한 처벌 법규는 형법제307조에 명시되어 있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므로 그 사회로부터 일정한 평가를 받는다. 그
입춘인 3일 부산 범어사 경내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려 봄소식을 전했다. 범어사엔 몇 년 전까지 백매,청매, 흑매, 홍매 등 비늘이 엉킨 늙은 매화가 향기를 내며 자태를 뽐내었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그 매화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그나마 노승(老僧)의 처소입구에서 그 흔적을 다소나마 찾을 수 있다. 이 노승이 심은 매화들은 ‘입춘’을 지나며 꽃망울을 터뜨리며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과 강한 의지를 전하고 있다.매화를 옛 선비들은 정신적 지주로서 동일시하며 숭상하며 귀히 여겼다. 고결, 결백, 충실의 상징인 매화는 추운
창 밖에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았습니다. 자연이 그리는 풍경화는 이 세상 어느 화가의 것보다 멋집니다. 내리는 눈 속에 나는 빠져 있었습니다.창 안에는 몸만 있고 마음은 창 밖에 내리는 눈 속에 하얗게 서 있었습니다. 그 눈 속에서 나는 내리는 눈처럼 자신을 한없이 내리고 또 내렸습니다. 일체의 오염과 흔적이 지워질 때까지 나는 스스로 참회의 눈발이 되어 날리고 또 날렸습니다.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저 순백의 아름다움을 잃고 스스로 오염되어 가는 것,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생각에 아프게 부딪치며 스스로 생각의 노예가 되어
새해의 태양을 바라봅니다. 수평선 멀리 떠오르는 장중한 발걸음, 일출을 보며 두 손을 모으는 시간동안 태양은 내 가슴 안에도 떠오릅니다. 내 가슴 겹겹이 쌓인 어둠을 지워내며 더 오르는 태양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봅니다.언제나 진리의 길을 걷겠다고, 언제나 정의를 사랑하겠다고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다 하겠다고, 나의 마음이 태양의 빛을 쫓아갑니다. 그것들은 다시 빛이 되어 내게로 날아와 길이 됩니다.해가 지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진실과 정의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고 그 빛은 말합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통하고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