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71)는 시인이며 사상가, 미학자다. 독재와 억압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동서양의 위대한 정신의 숲을 종횡으로 헤치며 살아온 시인의 나이는 이제 고희를 넘겼다.

노시인은 오랜 세월의 견딤과 삭힘의 소리를 시김새(출판사:신생)로 압축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시집 ‘시김새’는 삶의 고통을 삭이고 승화시킨 일종의 예술적 발효다. “황혼에 돌아오다/ 칠십 황혼에/ 마침내 다섯 살/ 외로운 두꺼비 친구 꽃 한 송이/ 영일의/ 그 함석집으로 돌아오다.(중략)이제 육십여 년이 지나 이제야/ 나의/ 한 화엄세계로 돌아왔다”(시집 ‘시김새’ 중 ‘황혼에 돌아오다’)

 지난 5월14일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만난 시인은 검은색 개량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눈빛이 형형했고, 케이팝(K-POP)과 한국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경제·문화·미학 등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쉼없이 쏟아내는 열변은 거침이 없었다.

놀라운 달변가였다. 시인은 최근 세 차례나 심장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주변에서 돈 처먹은 얘기가 들려와 욕을 했는데 한 달간 욕을 했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고 했다. 심장병은 ‘화’ 때문이라며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에 내신 시집 제목이 시김새인데, 무슨 뜻입니까.

“시김새는 판소리와 우리 민족예술의 핵심 미학입니다. 판소리 용어인데 시김은 ‘삭힌다’는 뜻이에요.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미의 이중표현이죠. 슬픔과 고통 속에서 희망 상승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시김새입니다. 막걸리도 시김새입니다. 요즘 유럽에서는 비빔밥, 된장, 김치 등 시김새 음식이 인기입니다.”

*케이팝(K-POP) 가수 중에서 시김새를 잘 살린 가수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임재범이 UC버클리대 공연에서 부른 노래에 ‘혼자 돌아간다. 가면서 생각하니 너무 쓸쓸해 눈물 흘린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처럼 슬픔을 스스로 삭이는 것이 시김새입니다. 이수만 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케이팝의 핵심은 콘텐츠라고 했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김 시인은 신문을 오려 왔다. 재일동포 2세 성악가 전월선 씨가 케이팝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시인은 기자에게 마이크를 대는 시늉을 하며 질문을 했다. “ 전월선은 한류 케이팝이 천편일률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여기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워낭소리 평론도 쓰셨지요. 그때 한류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일찌감치 예견하셨는데요.

“6~7년 전부터 한류 르네상스를 강조해 왔습니다. 독립영화인 워낭소리에 대해 60장짜리 원고를 쓰면서 ‘이게 르네상스의 시작이다’라고 했어요. 이충렬 감독이 1억 원의 제작비로 300만 명의 관객을 모았는데 이건 대박이 아니고 태박입니다. 이런 한류를 살리려면 르네상스 이론을 깊이 가져가면서 실행해야 합니다.”

*한류 르네상스의 장애 요인이 있다면.

“샤이니가 몇 백억, 소녀시대가 몇 백억씩 벌어들여요. 전부 거액이야. 이거 장난이 아니야. 돈이 많이 들어온다면 주문이 쇄도한다는 얘기지요. 미국, 이탈리아 등 부자나라에서 왜 돈을 지불하는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명운동에도 사기꾼이 우글우글하는데 한류 르네상스에는 사기꾼이 안 나타날 것 같습니까. 이런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전통에서 한류의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판소리 쑥대머리를 들으면 춘향이 감옥에 칼을 쓰고 있는데 이도령이 거지 행사를 하고 나타났어요. 고통, 절망, 실망의 시김새 이야기입니다. 시김새가 한류의 바탕이 돼야 합니다. 정조 때 중국에서 시 낭송전문가가 와서 우리의 낭송 체계를 점검한 뒤 결론을 내린 게 있어요. 9가지 이상이에요. 중국은 3가지인데 이보다 훨씬 많은 데 중국인들이 놀랐어요. 정가류, 영가류, 육자배기, 칠자배기, 불교의 게송 등 아주 많다니까.”

*40년 전 오적을 쓰셨는데 지금 사회의 오적은 누구입니까.

“오적이 아니라 오십적, 오백적이 설쳐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도둑질을 해요. 오적을 읽어 봐. 고발만 한 것이 아니라 도둑놈 연구체계가 들어 있어. 어떻게 도둑질하는지 연구를 잘해야 해. 이제 오적이 아니라 오백적이라는 담시집이 나와야 해.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좀 해야 합니다. 내가 72세에 오백적을 써서 또 감옥에 가야 하나. 이젠 감옥에 갈 힘이 없어(웃음).”

*김 시인은 진보의 원로이며 오랫동안 감옥살이도 하셨는데 요즘 통합진보당(진보당)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당 사태와 관련) 이것은 말기 현상이라고 생각했어. 집단적인 폭력 현상을 보면서 요런 때 말기 현상이 나오는 겁니다. 부정을 하고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안 해야 이것을 밀고 갈 수 있지. 애들 동원해 악쓰는 것도 마지막 현상입니다. 우리 국민도 빠꿈이야. 속으로 ‘요것들 봐라’하다 지난 총선에서 확 뒤집어 놨잖아.”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얘기하셨는데 올해 대선에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요.

“호혜와 교환, 획기적 재분배라는 신시 체제가 완성되려면 남녀 이원집정제가 돼야 합니다. 여성이 정권을 쥐게 된다면 남성들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최근 사회 유력인사들에게 얘기한 것도 어떻게 해서든 개헌을 해서 이원집정제를 실현해 보라는 것이었어요. 안철수가 되든, 정운찬이 되든 보완한다면 이원집정 형태로 독재자의 딸이 한 5년 집권하는 것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박근혜만 갖고는 안 돼요.”

*중도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중도지. 안철수도 20~40대뿐 아니라 50대에도 좌도 우도 아닌 지지세력이 있거든. 안철수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세계를 온유한 평화 속에 잘되게 하는 것으로 바라보였기 때문에 지지하는 거여. (정치 쪽에서) 뭐 한 것은 없잖아. (올해 대선에서) 어떤 지지냐, 누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어떤 방향의 사람을 고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요.”

*박경리 문학에 대해 추가로 글을 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칭찬해야 하나, 장모로서 아껴야 하나 고민하다 몇 년 전 박경리 문학론을 썼어요. 박경리 문학은 제일 아름다운 것이 2진법이에요. 무서워. 자세히 봐야 돼. 토지 전체 문장 대 문장 단위, 그리고 전체적 논리구조의 10분의 7이 2진법이야.

서양에서는 존 웨인이 등장해 뭔가가 해결되잖아. 토지에서 이걸 깼어. 해결을 안 해. 딴 데서 해. 10분의 3에는 혼류 3진법이 있어. 토지의 위대한 점은 일제 말기 여자가 시작해 여자가 토지를 재탈환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예언적 섬광이에요. 동아시아로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예견했어요. 3000년간 질곡의 삶을 살았던 여성이 개벽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김새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뛰어난 시장 소비 판단력을 갖고 있어요.”

시인은 홀연해 보였다. 그는 “좋아하는 땅이 따로 있다. 아주 쓸쓸한 강물이 하나 있다. 사람도 안 다니고 차도 안 다니고 산에 나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땅이 내 만년에 쓸쓸한 시가 나올 땅이로구나’라는 예감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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