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날 시골길을 지나다 보니 마을 입구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마을 어느 집 자녀가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한참을 지나다 보니 또 다른 현수막에는 그 마을 출신이 타지에서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참 오랜만에 접해 본 아름다운 모습에 내 마음마저 훈훈해 져 왔다.

도시 같으면 어느 학원의 건물에 붙어있을 현수막이 마을 전체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하는 농촌 마을 인심이 새삼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이며 전통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곁에 살아 있었다.

사촌이 논을 샀단다. 모두들 배가 아프다고 한다.
왜 이런가. 전염병도 아닌데 사촌 외의 많은 사람들이 배가 아프다고 난리다. 그 중에 또래 집단들이 더욱 난리다.
증상이 심한 사람은 고통을 참지 못해 책상을 치면서 언성을 높이며 왜 논을 샀느냐고 삿대질을 하니 사촌이 참다못해 논을 팔고 말았다.
그 제서야 모두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치미 떼고 모른 척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극명한 두 가지 상황을 놓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혼란스러움에 새삼 두려움을 느낀다.
 

난세(亂世)가 영웅을 낳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이 난세는 아니다.
그러나 난세와 무엇이 다른가.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처럼 모두가 제각각 자기소리만 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혼란스럽다. 그리고 살벌하다. 누구도 남보다 한발만 앞서가면 그날로 난도질당한다. 당사자의 잘못 뿐 아니라 사돈의 팔촌에 이르기 까지 본인도 모르고 있는 것도 들추어내어 까 벌린다.
당사자의 말은 모두가 변명으로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흥미가 있으면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 기정사실화 되고 결국은 당사자가 항복해야만 일단락 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러니 우리 주위에는 모두가 존경해야 할 인물이 없어졌다.
단지 역사상의 인물인 세종대왕이나 이 순신 장군 외에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만약 그 분들이 오늘 날 살아 계셨다면 정말 지금처럼 만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자신 있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답 할 수 없다.

아마 오늘 날 같았으면 청문회에 불려나와 마치 죄인처럼 수많은 정치인의 질책과 손가락질 받는 수모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 할 수 있을까. 그분 들이 현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원래 우리 민족은 앞서 시골마을 입구에 붙어 있는 현수막처럼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며 그 마을의 영광으로 삼아 모두가 그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살아왔다.
지금 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모두 우리의 지도자를 키워나가자.
우리 주위에는 각 분야마다 우리가 키워나가야 할 훌륭한 재목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의 덕목에 박수를 보내고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어 우리의 지도자로 자랄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보태자.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고 잘못보다는 잘한 걸 찾아 박수를 보내고 부각시킴으로서 그가 더욱 잘 할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자. 그것이 바로 나를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사회를 융성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남의 잘못이나 들추어내고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는 일이랑은 그만 두자.
 

언젠가는 그런 자신이 남이 걸어오는 발목에 자신이 넘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이제 얼마지 않으면 지방선거가 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마음의 상처를 입을지 두렵다.

언제까지 우리는 허무맹랑한 마타도어에 현옥되어 진정한 지도자를 잃게 되고 또 억울한 희생자를 낳는 일을 반추해야 하는가.
이 시대의 지도자가 그립다.
시골길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그립다. <20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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