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남 전 부산시의회의원
 예의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서울에서는 하다못해 ‘강아지에게도 예절교육(?)을 시키고 있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짐승에게조차 예절교육을 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예절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현실사회에서 예절이 자꾸만 사라져 감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공자는 생존 당시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예를 설파했다. ‘예절과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어려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공손하면서도 예의가 없으면 헛수고일 따름이며, 조심하면서도 예의를 모르면 겁쟁이 같고, 용맹하면서도 예의가 없으면 난잡할 따름이며, 곧으면서도 예의가 없으면 각박하기만 하다.’이런저런 공자의 가르침도 그 무렵 세태가 어지러워 예의가 땅에 떨어진 데서 나온 반작용 이였다고 본다.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맨 앞칸에는 ‘경로석’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경로석’에는 이마에 복숭털이 보송보송한 새파란 ‘애늙은이’들이 버젓하게 앉아 있다. 노인들이 중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들어서도 ‘애늙은이’들은 본체만체다. 도무지 예의를 모르는 버릇없는 ‘애늙은이’들이다.

‘사람’을 정의할 때 갖가지로 번지레한 말들이 들먹여진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L.A.세네카) ‘인간은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다.(B.파스칼)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동양사람들의 정서에는 웬지 속속 배어들지 않은 말들인것 같다.

그러느니 보다 ‘인간은 예의를 존중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강아지에게도 예절교육’을 시키는 마당에 인간사회에는 예의가 바래 버리고만 있다.<20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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