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남 전 부산광역시 의회 의원
 우리는 툭하면 ‘리더쉽’을 들먹인다. 나라가 어지러우면 ‘리더쉽’이 없는 탓이라 하고, 나라가 잘 되어 나가면 ‘리더쉽’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엄밀하게 따지면 '리더쉽' 말고도 ‘헤드쉽(Headship)’이라는 게 또 있다. 이 양자를 사람들은 곧잘 혼동한다.

‘헤드쉽’이란 무엇이나 머리만으로 이해하고 명령만으로 사람을 다루려는 마음씨를 뜻한다.

이와는 달리 ‘리더쉽’이란 한 집단의 수족이 되어 일해 가면서 전체를 끌어 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헤드쉽’과 ‘리더쉽’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같은 것은 그저 말꼬리에 붙어 있는 ‘쉽(ship)이란 말 뿐이다. ‘쉽’자가 붙기는 ‘스포츠맨-쉽’이 처음이다. 17세기의 일이다. 어느 날 영국의 ‘리처드-킹스턴’경이 ‘풋볼’을 관전하고 있었다. 사소한 일로 ‘스코틀랜드’군과 ‘잉글랜드’군 선수들이 충돌하자 관객도 흥분하여 ‘그라운드’에 몰려 들어갔다.

이 때 ‘킹스턴’경은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의 승무원이다. 우리는 이 배를 침몰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 이 ’스포츠맨‘을 위한 배려를....’ 이런 '배'를 꼬리에 붙이고 있는 이상 '헤드쉽'이나 '리더쉽'이나 다를 바가 없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리더쉽’이란 같은 배 안에도 모두가 다 타고 있는데 비켜 ‘헤드쉽’은 배에 탄 사람들을 배 밖에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승객들은 ‘헤드쉽’과는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쉽’엔 두뇌와 심장이 다 필요한데 비겨 ‘헤드쉽’에는 심장이 필요 없는 까닭도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은 ‘리더쉽’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리더쉽’과 ‘헤드쉽’중 어느 한쪽이 더 판을 치고 있느냐는 게 더 중요하다 하겠다. 차차 세계에서 버림받아 가는가는 가운데 박근혜정부가 취임 6개월을 넘기면서 ‘소란’도 보이지만 조용하다 할수 있다.

혹은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승객들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것도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이 ‘리더쉽’이 믿음직한 때문 일것이다. 짚어보면 우리나라 도 서서히 ‘헤드쉽’에서 ‘리더쉽’을 전환해나갈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뢰와 원칙을 존경할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리더’나 승객이나 한 배 속에서 완전히 같은 운명에 놓여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더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

‘헤드쉽’이란 그리 힘든게 아니다. 정말로 힘든 것은 ‘리더쉽’이다. 오래 가는 것도 ‘리더쉽’이다. 박근혜 정부가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신뢰 프로세스’ 원칙은 참으로 크다 하겠다.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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