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많은 것을'

▲ 김문곤 전 금정구청장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말자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 책상머리에 이 같은 격언을 붙여 놓고 머리띠 졸라매고 쏟아지는 잠을 쫓고자 찬물에 세수하며 책과 시름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어단어 하나 외우느라 수십 번을 쓰 내려가다 그것도 부족하면 사전을 찢어 삼켜버리는 극성파도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해 바라던 학교에 진학하고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렇지 못한 나는 항상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 단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가 내 유일한 변명이 되어 때로는 나태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후회로움에 자신을 꾸짖어 보기도 했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모든 걸 내려놓으니 지난 날 그토록 알려고 몸부림 쳤고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했던 그 순간들이 그저 부질없어 보임은 내가 아직 지식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함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걸 다 알려고 하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지나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더욱 알차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해외여행 길에 오르게 되면 그동안 즐겨보던 TV 연속극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궁금하고 국내의 각종 뉴스에 목말라 호텔 방에 있는 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국내 사정을 알려고 얼마나 애섰던 나 였던가. 마치 혼자 버림받은 것 같은 소외감에 마음 허전해 하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 국내에 돌아와 TV를 켜면 연속극은 그동안 방영을 안 한듯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지고 신문 기사는 시간이 멈춘 듯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차라리 그 짜증나는 정치기사를 접하지 않을 수 있었고 어두운 사회면을 모르고 지나왔던 시간들이 내게는 훨씬 값진 시간이었음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차라리 모르고 지나간 그 시간이 내게 자양분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우리 주위엔 정말로 박학다식한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주변의 모든 것에 흥미를 갖고 의문이 나면 끝까지 파고들어 알아내는가 하면 해외여행을 가도 스마트폰인가 뭔가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내의 온갖 뉴스를 훤히 알고 있다.

한때는 그분의 능력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모든 걸 잊고 여행을 즐기고 있는 내가 더 현명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모든 걸 너무 알려고 하지 말자. 남의 허물이 보이면 그것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냥 모르는 척 덮어주고 지나치면 내 마음이 훨씬 편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감에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걸 알아야 한다.

 '밥상머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정보가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넘쳐나는 정보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때로는 바보처럼 무시하고 지나쳐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면 자신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모르고 지나는 사람이 더 현명한 사람인지 모른다.

그것이 나를 더 풍요롭게 함도 알아야 한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이 사회는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밥상머리 예절 삼식(三食)이네 집, 마치 누구의 집을 일컫는 것 같지만 삼식이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삼식이네 집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집을 말한다.

삼식(三食).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 건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고 당연한 일이건만 요즘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사람은 마치 조금 모자라거나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우리네 가정은 직장이라는 새로운 조직 속으로 귀속되어 가족이라는 개념이 차츰 무너져가고 있다.

지난 날 우리 조상들은 한 울타리 안에 8촌까지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가족 제도에 익숙해지면서 하루 세끼 식사 때가 되면 모두들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으로 모두들 자신의 서열에 따라 앉을 자리가 정해지고 가장 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차례대로 식사를 시작한다.

모두 자신이 앉을 자리가 정해져 있지만 단 한명 막내 손자 놈은 서열에 관계없이 가장 높은 할아버지의 밥상에 앉아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밥을 먹는데도 규율이 있어 소리 내 먹거나 윗사람의 수저가 가지 않은 반찬에 먼저 젓가락질을 해서 안 되며 말을 했어도 안 된다. 자신이 다 먹었다고 어른이 수저를 놓기 전에 수저를 놓았어도 안 되고 먼저 일어나서도 안 된다.

웃어른이 일어나실 때 까지 자리에 앉아 어른의 말씀을 듣고 어른이 일어나신 후에야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가족 간의 우의를 다짐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 조상님들의 식사자리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자리요 또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가족애를 다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핵가족으로 변하고 한 집에 사는 가족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어진 것이 오늘 날 우리의 가정이다. 자식은 새벽같이 학교로 가고 부모는 출근 시간에 쫓겨 빵 한 쪽에 쥬스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근하면 저녁 귀가 시간은 제 각각이라 각자 적당히 해결하고 잠자리에 든다.

휴일이 되어 쉬는 날도 모처럼 만난 휴식시간을 즐기느라 늦잠을 자고 각자 아침 겸 점심으로 적당히 해결하고 저녁은 외식 아니면 다이어트니 뭐니 하면서 제 각각이다.

그러니 가족이 하루 한 끼도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하루 세끼를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전설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그것도 하루 세끼 식사시간을 정해 놓고 온 가족이 시간에 맞추어 모이게 하다 보니 어느새 식사 시간이 되면 시장 끼가 돌아 저녁모임이 있는 날은 집에서 간단히 먹고 갈 정도로 습관화 되고 말았다.

이러한 나의 고집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쳐 자식들도 저녁모임이 있는 날이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갈 정도가 되었다. 점심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불가능하지만 아침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권하고 아침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함께 먹게 끔 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식사를 함께 한다는 의미보다는 여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을 갖기 위함으로 식사가 끝나면 각자 자신의 일이나 그날의 계획을 말하며 가족 간 정보를 공유하게 하고 나는 나름대로 가족사(家族史)나 예의범절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이것이 바로 밥상머리 예절이다. 옛날 조상님들 말씀 중에 그 집안의 예의범절은 밥상머리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듯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그러기에 하루 세끼 밥을 먹는 삼식이네 집을 고집하고 있다. 이마저 무너지면 우리 가정도 가족의 얼굴을 볼 시간이 없어질까 두려운 생각에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내가 고맙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아내의 의견이라는 게 옳을지 모른다 밥상머리 예절. 이 습관이 보다 많은 가정에 그대로 유지되어 현대화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가족이라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인연이 그대로 이어져 공동체 의식이 되살아나기를 원 한다.

며칠에 한번이라도 모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주부가 정성드레 해주는 따뜻한 밥과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리를 가져보자. 그것이 우리 가정의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는지 알게 되리라.

'기억의 저쪽'

기억의 저쪽에서 전해온 추억 하나 사람은 보통 자신이 한 일을 잊고 산다. 누군가가 자신이 베푼 것은 오래토록 기억 하지만 도움을 받은 것은 쉽게 잊는다고 했는데 나는 도움 받은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며칠 전 아침 밥상머리에서 큰아이로부터 한 가지 질문을 받았었다.

우리 식구는 아침식사만큼은 반드시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별다른 일과가 없는 우리 부부로서는 때로는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들내외가 직장생활을 하고 손자 놈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등교시간에 맞추느라 언제나 7시 15분이면 모두들 밥상에 앉게 된다. 하루 중 유일하게 온 식구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라 자연적 각자의 일과나 가족 간의 이야기가 이 시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아버님 혹시 구청에 계실 때 직원 자녀들에게 떡을 보내신 적이 있으십니까?”라는 큰애의 말에 잠시 무슨 말인가 생각을 더듬고 있는데 “수험생 자녀들에게 수능시험 때 떡을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물어 봅니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이미 잊고 있었는데 내 기억의 저쪽에 숨어있던 추억하나를 새삼 일깨워 주며 지난 날 심혈을 기우렸던 몇가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었다. 내가 처음 구정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때 우리 구청은 전임자의 개인사정으로 무언지 모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고 직원들마저 의욕이 없어 보여 무엇보다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리하여 시도한 것이 직원한마음대회로 - 하기야 직협에서는 휴일에 쉬지도 못하게 행사를 한다고 극열하게 반대를 했지만 - 관내운동장을 빌려 체육대회를 열었다. 구청에서 이러한 행사를 하게 되면 의례건 여직원과 말단직원이 뒷바라지를 하느라 곤욕을 치르게 되기에 그들로부터의 반발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것을 알기에 나는 사무관이상의 간부부인들에게 그 역할을 하게하여 운동장에 솥을 걸고 국을 끓이고 전을 부쳐 즉석에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게 함으로서 모든 직원들이 마음껏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 그때 다행이었던 것은 간부부인들이 저항하거나 기피할까 염려했었는데 모두들 남편의 직장에서 자신이 한몫을 함으로서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것에 고마웠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한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직원의 생일에는 관내 제과점과 연계하여 생일 케익과 와인을 집으로 직접 배달케 하였고 유아기 자녀를 둔 직원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위해 부모의 마음으로 부산의 기초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직장보육시설을 개설했었다.

각종 취미활동단체의 행사에 격려금을 보냈고 고3 수험생을 가진 직원들의 고충을 나 자신 수없이 겪었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수능시험 전날 찰떡을 준비하여 간단한 격려쪽지와 함께 전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나는 직원들과 한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지만 현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이 모든 것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큰애가 우연히 어느 구청직원과 자리를 함께했을 때 자신의 두 아들 모두 대학을 나와 고시까지 통과하여 청운의 꿈을 이루어가면서 고3때 나로부터 떡을 선물 받은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새삼 감회에 젖었었다.

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자신은 예사롭게 여겼던 사실이 상대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어느 것 없이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그들이 나의 작은 행위하나를 그토록 오래 기억해 준 것에 오히려 내가 감사할 뿐이다. 사람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보람을 느끼고 기뻐하는가 보다. 참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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