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이뻐요?’
이뻐는 예쁘의 잘못된 말이지만 젊은 날 아내는 가끔 화장을 곱게 하고는 나에게 이렇게 장난(?)삼아 물었다. 당연히 예쁘다고 대답해 주리라 기대하며 아내가 내게 묻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럴때 마다 고개를 내 젓는다.

이런 나를 아내는 실망하는 눈치다. 어찌 보면 참 눈치 없는 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아내의 얼굴은 예쁘지 않은 게 솔직한 표현인데 그럼에도 예쁘다고 하기엔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여보 당신은 이쁜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요’
아내는 처음에 이 말의 뜻을 얼른 이해하지 못한 듯 이외의 표정을 짓다가 ‘결국 이쁘다는 말이잖아요?’하며 조금은 위안을 받는 듯 했다.‘아니 이쁜 것 하고 아름다운 건 달라요, 이쁜 건 타고나거나 성형을 하면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름다워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 잖아요’ 그제 사 아내는 또 그 소리라는 듯 아무 말이 없다.

그렇다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예쁜 얼굴을 갖고 있으면서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요즘은 성형수술이 발달되어 거리에 나가면 예쁜 얼굴을 가진 여인들이 넘쳐나고 있다.한 가지 형태의 얼굴이 예쁘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렇게 고쳐 그 얼굴이 그 얼굴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은 얼굴들이 많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매까지 칼을 대어 한 틀에서 나온 인형처럼 똑같은 얼굴과 몸매를 가진 젊은 여인들이 거리에 넘친다. 오죽하면 후천적 일란성 쌍둥이란 말이 나왔을까

그러나 정작 아름다운 여인은 보기 힘들다.
아름다움이란 그 사람의 내면에서 울어 나오는 하나의 인격이다.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등에서 나타나는 품격으로 아름다움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다스림으로서 얻어지는 결과다. 우리는 가끔 그 사람의 몸에서 빛이 난다는 소리를 듣는 적이 있다.
 

멀리 있어도 한눈에 들어오는 무언지 모르는 이끌림에 가까이 가면 눈부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을 만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두가 성형으로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듯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여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 졌으면 하는 소망을 지녀본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가 될까.
나의 이 소망이 헛된 꿈이 아니길 바라며 오늘도 내 아내가 예쁘기 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이길 원한다.
그대 아름다운 여인이어라 ! <201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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