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이 궁금하면 거울 앞에 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얼굴을 매만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면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일 뿐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거울보다는 남을 통해 나를 보기 시작하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지금 밖으로 나타난 나일뿐이지만 남을 통해 나를 보면 그 속에 나의 과거가 있고 나의 미래가 엿보인다.

 나는 원래 태생부터가 허약하여 늘 건강을 걱정하며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병원을 드나드는 일이 가끔 생겼다. 병원이란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라 대다수 사람들의 몰골이 수척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나는 그런 분들을 통하여 행여 내가 저런 모습으로 변해가지 않을 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많아졌다.병원 밖에 나서면 한쪽 팔에 링거 병을 매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환자를 보면 지난 날 그토록 끊으려고 애쓰면서도 쉽게 끊지 못했던 내가 그곳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나를 부끄럽게 했었다.

 휠체어에 환자를 태우고 지나가는 가족의 피로에 지친 모습을 보면 내가 병을 앓고 있을 동안 가족들의 마음고생이 떠올라 나를 우울하게 하였고 수술실로 향하는 이동식 침대의 뒤를 따라가는 가족들의 그 착잡한 모습들을 보며

지난 날 나를 되돌아보며 가족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짐작케 했었다.

 젊고 건강한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은 잠시뿐 그 시절 영생이 주어진 듯 함부로 살아왔던 나의 과거 모습이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책상 위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다 문득 날이 갈수록 붉은 줄을 그어야하는 이웃들이 많아져가는 현상을 보며 문득 언젠가 내 이름도 이렇게 남의 전화번호부에서 지워질 날이 있겠지 하는 허무감이 온 전신에 퍼져왔다.

 거리에서 장의차를 보면 가족들의 애잔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속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신에 퍼져오는 전율에 몸서리 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날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살아있는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무의미하게 살아가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아깝다. 뒤 늦게나마 행여 나로 인하여 마음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펴 그 마음을 풀어주고

나로 인하여 피해본 분들을 찾아 만에 하나라도 그 피해를 보상해 주고자 노력하고 은혜 입은 분들을 찾아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자.

 받는 자리보다 베푸는 자리에 서서 내가 베풀 수 있는 모든 것 베풀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그리하여 후회 없이 살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늘도 남을 통해 나를 본다.

그들 속에 내가 있으니까.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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