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한 점 티끌은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내고야 만다.

‘취모멱자’란 말이 있다. 털을 해치며 흉터를 찾는 다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꼬치꼬치 캐어서 찾아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는 그런 것이 참 많다. ‘그을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타령을 한다.’는 자기 흉을 모르고 남의 흉만 탈을 잡고 나무란다는 뜻이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것도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참으로 사람들은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이 열 가지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것 만 같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 잘못을 인식하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일은 없다. 또한 자기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운 것은 없다.”

모든 잘못과 고슴도치는 바늘이 없이 태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모든 과오에는 뚜렷한 의도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적의도 없다. 무엇이 두려우며 무엇이 쑥스러운가?

/법구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

“사람이 먼저는 잘못이 있더라도, 뒤에 다시 저지르지 않으면 그는 능히 이 세상을 비추리라. 달이 구름에서 나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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