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기슭에는 범어사에 딸린 12암자가 곳곳에 진좌(鎭坐)하고 있다. 청련암을 지나 좁다란 길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세속의 번뇌를 계곡물에 씻어 말끔히 흘려보내고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라는듯 속삭이는 물소리가 들리는 돌다리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나면 곧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계곡에 자리잡은 내원암에 이른다. 내원(이란 암자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곧 안집 또는 안방이란 뜻을 지녀 듣기만 해도 편안한 곳이다. 또한 부처님이 도솔천 내원궁에 기거했으므로 마땅히 내원암이란 큰스님 대득스님이 상주하는 곳이란 의미를 갖게된다. 내원암은 선(禪)도량으로 여기에는 제일선원(第一禪院)이란 현판이 달린 선방이 있다.

한국 불교의 얼을 새로이 심고 새로운 불교이념의 선풍(禪風)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신 경허, 용성, 만해선사(韓龍雲)가 내원암에서 선의 생활을 모색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법당은 대비자전의 편액으로 관세음보살이 흰옷을 입고 한 손에 불사(不死)의 감로수를 담은 감로병을 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천수천안 (千手千眼)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고 자비의 손길로 끝없는 평온으로 인도하는 천수관음이 구세주로 모신 사찰이 바로 전각이다.

내원암의 저녁 예불 때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는 법당을 향하는 참배객의 두손을 다소곳이 모으게 한다. 이즈음 「쾅더응-」멧부리를 울리는 28번의 종소리가 울려온다.

28개의 모든 하늘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듯 「더웅덩-」긴 여운을 남기며 계곡을 따라 멀리 퍼져가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어두운 마음을 열어 지혜로 밝히소서 라고 말하듯 말이다.

멀리멀리 하늘 저 끝까지 울려퍼지고 깊이깊이 땅속 도산지옥까지 스며드는 듯한 종소리는 산으로 둘러쌓인 내원암의 저녁에 계곡을 따라 메아리를 이루며 은은히 울려오는 바 단순한 종소리가 아리고 사람의 마음을 부처님의 품안으로 안내하는 이름할 수 없는 신묘한 운치를 자아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를 특별히 「내운모종」이라 하여 귀히 여겼다고 한다. 오늘도 이 종소리는 탐욕과 질시와 어둠으로 가득 찬 세속의 때묻은 마음을 밝히기 위해 중생계 속으로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 내원모종(內院暮鐘)은 금정8경(金井八景) 중 하나입니다.
※ 금정8경(金井八景)
어산노송(魚山老松), 계명추월(鷄鳴秋月), 청련야우(靑蓮夜雨), 대성은수(大聖隱水), 내원모종(內院暮鐘), 금강만풍(金剛晩楓), 의상망해(義湘望海), 고당귀운(姑堂歸雲)
<1994년 9월 16일자 금정신문 『다시보는 금정산』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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