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인의 생활 중에서 한가지 대조적인 것이 있다. 나이관(觀)이다. ‘영-레이 디! 하우 아 유?’ 하는 말은 직역하면, ‘젊은 부인! 안녕하십니까?’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젊은 20대의 여인을 보고 하는 인사는 결코 아니다. 백발이 빛나고 주름살이 깊은 파파(皤皤)할머니한테 이 같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당연한(?)인사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꾸어 생각해보자. 우리네 할머니보고 그렇게 인사 했다가는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동양적인 생활관념(生活觀念)으로 생각하면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는 분명하다. 유수같이 지나가는 세월도 되도록 붙들고 늘어져서 즐거움으로 채워 보자는 것이 서양인의 생활습성이다.

현대의 생리학자들이 인간의 나이를 두 가지로 나누고자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하나는 생리적 연령이고, 다른 하나는 역년령이다. 전자는 세월따라 늙는 나이를 말하지만 후자는 백발노인 보고도 ‘영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낙천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늙고도 젊을 수 있고, 젊고도 늙을 수 있는 인생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인지 모른다. 생리학자들은 그 때문에 인간을 역연령에만 얽매어 늙었다고 한탄할 것도 없고, 또 그것에만 매달려 젊음을 과신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노화현상을 보면 나이가 들었다고 일률적으로 모든 조직의 기능이 퇴화하는 것은 아니다. 백발인데도 다른 기능은 젊은이 못지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다른 기능은 멀쩡한데 눈은 어느새 침침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뉴욕 타임스’의 한 통계에 따르면 소련정치국 요인들은 평균 연령이 61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의 후계자가 될 사람들의 평균연령은 그보다 5년이 낮은 56세, 또 그 후선이 평균 52세이다. 이들이 속된 말로 ‘노망(老妄)그룹’이라면 그 공산사회에서 그대로 놓아둘 리가 있겠는가.

달리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들에게는 젊은이 못지않은 활기와 박력을 기대할 수 있음직도 하다. 중국노인들의 속담에 ‘네가 길을 걸어 온 것 보다 더 많은 다리를 나는 건너왔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역시 노련(老鍊)의 미덕을 교훈하는 것이기도 하다.

‘활기+노련’이 곧 역연적(曆年的) 노인의 상이라면 이것처럼 아름다운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지역정치를 하는 자들이 고령자로 구박(?)을 받고 있는 것은 도리어 시대착오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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