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75년을 살았다. 1944년에 태어났으니까. 이듬해가 해방이다. 예전 같으면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살기가 풍요로워졌다. 그게 다 광복의 덕일 꺼다. 그런 광복절 73주년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해방이 되고 지금은 세계가 놀랄 만큼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는데 올 8.15 광복절은 쓸쓸하고 조용하다. 기자가 구독하는 주요 신문에는 사설 하나 쓰여지지 않았다.

누구에게 겁이 나서일까?

그날, 1945년 8월15일. 우리는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메어졌고,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가슴을 펴고 저마다 만세를,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속이 후련했지.

마치 석달동안, 아니 36년을 두고 목말랐던 사람이 냉수를 들이켰듯이 우리는 속이 후련했지, 그것은 우리말로 부른 진짜 만세였거늘......

아이들은 덩달아 ‘크레용’으로 태극기를, 그리고 이불속에서 응얼응얼 배워둔 애국가를 불렀지, 저마다 ‘테너’처럼, ‘소프라노’처럼---, 하늘의 구름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 합창에 귀를 기울였지, 참, 그날의 하늘이 어쩌면 그리도 맑고 푸르렀을런지......

아, 반가운 내 이름, 어제까지 /가네다상/이던 낯선 내가 오늘부터는 ‘김서방’으로 주인을 찾았지, /마쓰모도상/ /리노이에상/도 모두들 자기 얼굴을 찾고 반가와 눈물이 글썽했지, 뜨거운 두 손을 잡고 파도처럼 흔들며 다시는 내가 두 사람-두이름으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약속했었지.

이젠 기차를 타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달려갈 수 있겠구나. 이 서방이 모는 우리 기차를 타고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동으로도 가고, 서로도 가고, 남과 북으로도 가며 우리말로 노래도 부르고 인사도 나누면서, 우리 강산을 꽝꽝 디디면서, 뒹굴면서 활개치고 다닐 수 있겠구나......사람들은 어께 춤을 추었지.

어언

세월이 굽이돌아 73년을 지났거늘...... 다시 그날을 맞아 태극기를 흔들어도, 우리말로 만세를 외쳐도, 팔뚝의 힘은 그 힘이 아니고, 목청의 울림은 그 낭랑함이 아니다. 어제의 진흙길엔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덮히고, 달구지 바퀴뜰엔 녹이 슬고 굼벵이가 잠자던 지붕은 무쇠의 ‘콘크리트’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햇볕이 닿지 않는 그 여전한 우물이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머리, 우리의 생각들, 그 뜨거운 피도, 그 얼음장 같던 머리도, 그 단단한 의지도 한 조작 구름처럼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지.

‘미움’과 ‘사람’은 아직도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며, 어제와 오늘은 물에 물을 탄 듯이 변화가 없고, 그렇게 반갑던 이웃도 어느새 낯선 사람들이고,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어깨춤을 추던 벗들은, 그 많은 벗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무명옷처럼 수수하고 날이 없던 인정들은 어느새 절벽이 되었구나.

그까지 지나간 70여년은 또 잠깐이지, 이제 우리는 이여차, 영차, 주춧돌을 놓듯, 잘못된 관행은 바로 잡아 새 다리를 놓듯, 우리는 그 어기찼던 가슴을 다시 펴고, 팔뚝에 힘줄을 세워 새날, 새 희망을 쌓아야지, 그까짓 지나간 세월은 보약을 삼켜두고, 이제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하루하루를 정말 그 해방의 그날처럼 살아야지, 살아가야지.

TV에서 ‘광복절’행사가 중계되고 있다. ‘정지용’의 시를 개사한 ‘향수’에 ' ... 꿈엔들 잊으리라....가 나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러나 광복절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 '강갑준 칼럼'에 구독하는 메이저 신문에 8.15 광복절에 사설이 하나 없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16일자 신문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년 기적의 역사 누가 지우려하나'의 사설이 쓰였다. 대강은 다음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수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고"로 말했다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김정은은 올초 신년사에서 "자기 국가의 창건 7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의의 깊은 일"이라고 했다. 주민을 노예로 짓밟은 정권이다. 정말로 태어나지 말아야 할 북한 정권은 다음달 9일 자기 생일을 성대하게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 준비에 바쁘다고 한다.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감탄했던 대한민국 정부 탄생은 찬밥신세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고 결론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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