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암 입구에서 왼쪽으로 급경사진 바위를 타고 60m가면 반석 위에 또렷하게 새긴 의상대에 이른다. 사방이 탁 트인 이곳의 전망은 남으로는 총총 건물이 들어선 시가지, 그리고 그 너머 서 있는 민락백산과 광안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그림같이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 의상봉, 동쪽으로는 범어사가 품에 안길 듯이 산자락에 싸여 있으며 멀리 오륜대가 둘러 서 있다. 여기 의상대에는 꽤나 넓은 반석이 널려있고 바로 밑에는 천길의 벼랑을 이룬 요새에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절벽이 있다.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멀리 동해를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자연이 빚어내는 천하의 절경이다. 여기가 팔경 중 하나인 의상망해다.

의상대사는 일찍이 범어사를 창건하면서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하는데 의상대에 얽힌 아름답고 숭고한 전설이 전해온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당도하여 농부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덜컥 노독(路毒)으로 병에 걸린 것이다. 한참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던 스님을 회생시켜 준 사람이 바로 농부의 딸 선묘(善妙)였다. 스님은 선묘가 생명의 은인이기에 은혜를 갚고자 불도를 닦는 수행자라는 생각을 잊고 선묘에게 구혼을 하였다.

『구혼을 한 심정은 이해하오나, 스님께서는 불도를 닦는 수행자이십니다. 스님, 그 청을 거두어 주세요. 저는 스님과 영혼의 사랑을 원합니다. 』선묘낭자의 대답이었다. 의상은 난감했다. 그래서 선묘와 작별하면서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신라로 돌아갈 때 데려가겠소』이에 선묘 낭자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부디 약속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소녀는 그날까지 기다리겠나이다』며 약속했다.

의상은 약속대로 귀국길에 선묘집에 들렀으나 선묘는 없었다. 대사의 책무상 더 지체할 수 없는 사정이라 의상대사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선묘는 그 사실을 알고 곧장 항구로 뛰어갔으나 배는 이미 멀리 항해하고 있었다.

선묘는 망망대해로 꼬리를 감추는 의상대사의 귀국선을 바라보며 『원컨대 이 몸이 죽어서 용이 되어 큰 스님이 타고 가시는 저 배를 호위하고 신라로 갈 지어다 』라고 빌고 스스로 몸을 바다로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곧 선묘의 마지막 원대로 큰 용으로 변하여 배를 호위하였고 의상대사는 무사히 신라로 돌아갔다.

의상대사는 선묘의 굳은 서원을 가상히 여겨 금정산 범어사를 창건하면서 건물기둥머리에 용을 아로새긴 장식을 새김으로 해서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옛이야기가 얽혀있는 곳, 확트인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는 곳이 의상대이며, 맑은 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절경이 바로 8경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의상망해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전경

※ 의상망해(義湘望海)는 금정8경(金井八景) 중 하나입니다.
※ 금정8경(金井八景)
어산노송(魚山老松), 계명추월(鷄鳴秋月), 청련야우(靑蓮夜雨), 대성은수(大聖隱水), 내원모종(內院暮鐘), 금강만풍(金剛晩楓), 의상망해(義湘望海), 고당귀운(姑堂歸雲)

[1994년 9월 30일자 금정신문 『다시보는 금정산』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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