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誕 이 덕 진

"선생님 왜 이렇게 감기가 안 떨어지죠??"
"요즘 감기가 그래요.. 물을 많이 드시고 피곤하지 않게 잠을 푹 주무세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여지없이 찾아오는 감기라는 친구가 필자를 괴롭혀 가까운 개인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받기위한 대기실에는 20~30명의 환자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처방전을 받고 수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남루한 모습의 할머니 한분이 간호사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또 약 더 달라고 하시네. 안돼요! 처방전에 적힌 것만 약국 가서 받아 가셔야 되요..."
간호사는 부드러운 말투로 할머니를 달래며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약을 더 달라며 때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거는 아는데 내가 다시 여기까지 나올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러니 사정한번 봐 줘요.." "의사 선생님이 처방내린 것 외에는 더 받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할머니 약 한꺼번에 많이 먹어서 위장병도 생기셨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더 주지 말라고 했어요."
간호사는 정중하게 할머니한테 거듭 달래며 이야기 했고 그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할머니는 약을 더 달라고 졸라댔다. "저 아가씨 내가 여기 한번 나오려면 차비가 적잖게 들어서 나오기가 힘들어 그러니 약을 더 줘요. 네? " 계속해서 할머니는 약을 더 받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뒤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할머니를 향해 불만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 할머니 때문에 자신들이 진료 받을 시간이 지체된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은 할머니는 한쪽으로 비껴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필자의 순서가 될 때까지도 할머니는 바닥에 앉자 진료실을 쳐다보고 간호사들을 쳐다보며 눈을 떼지 않았다.

필자가 진료를 받고 나올 때쯤
"할머니 약은 더 못 드려요 약 많이 먹는다고 좋은 거 아니에요"
라고 진료실에서 같이 따라 나온 의사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의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그게 사실은 여기 한번 오려면 내가 힘들어서 그래요 차비도 그렇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훤칠한 키의 50대 초반의 인자하게 생긴 의사는 그 말을 듣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할머니 이 돈으로 이 약 다 먹고 그래도 안 낳으면 차비해서 오셔야 해요... 아셨죠?"
라며 만 원짜리 몇 장을 할머니 손에 쥐어 주었다.

할머니는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며 극구 사양을 했지만 의사는 할머니에게 차비를 쥐어 주었다. 며칠 후 병원을 다시 찾은 필자는 간호사를 통해서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일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고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며 사는 곳도 시내에서 멀고 골다공증이 심해 걷기가 불편해 병원에 오는 날이면 좀 더 많은 약을 한꺼번에 받아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자상하게 대해주던 의사의 인자한 얼굴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고(故)장기려 박사가 생각이 났다. 일생을 서민적으로 살다가 1995년 여든여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서민 아파트 한 채 뿐, 죽은 후 묻힐 몇 평의 땅 조차 없었다.

그는 살아생전 전국 각지의 가난한 수술 환자들과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에서 치료해주고 입원비와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노라고 눈물을 흘리면 그들의 딱한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그 환자의 치료비를 자신의 월급으로 채워 넣곤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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