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해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슈퍼맨으로 군림해왔다. 23일 개막된 첫날 회의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중환자”가 된 미국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놓고 전문가들이 묘안을 째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결론은 비관적이다. 미국의 중병을 단시간 안에 치료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주인공은 물론 부시 대통령이다. 그가 테러리스트를 잡으려다 경제를 잡았다는 힐난까지 나왔다. 아프간과 이라크 사태로 공격을 받을 때마다 부시는 그래도 경제는 잘 돌아가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이제는 할 말이 없어졌다.

금융 투자가 조지 소로스의 경고는 심각했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서브프라임(부실담보대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바탕으로 지난 60년간 신용팽창을 계속한 결과라는 것이다. 인도, 중국, 쿠웨이트 대표들은 미국의 자업자득이라는 묘한 방응을 보였다.
미국이 달러의 힘만 믿고 그동안 오만했으니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그동안 외국의 주권자본이 미국 자산을 매입하려할 때 사사건건 시비를 건 일을 지적하는 말이다.

미국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더 심한 말도 했다. 미국이 “신흥시장”으로 전락하고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이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는 역할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경제위기는 대략 1년 정도 갈 것이며 부동산 버블 외에 자동차 대출, 회사채, 보험 분야에서도 신용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미국 경제는 연착륙 단계를 지나 경착륙(crash landing)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그 피해의 경중을 예측하는 게 유일한 할 일이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한 것도 때를 놓쳐 인플레를 유발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콜롬비아대학 교수는 FRB의 금리인하가 “너무 늦었고 너무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정책은 보통 6개월 내지 18개월이 돼야 효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번 조치로 시장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가 미국 은행을 매입해도 환영할 판이다” 미국의 투자 분석가는 지난 주 CNBC TV에서 자조 섞인 한탄을 토해냈다. 미국기업들이 그만큼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로버터 키미트 미 재무차관은 한술 떠 떴다. “미국경제가 신임투표를 받고 있다. 여기서 성공하지 못하면 큰 일”이라고 말했다. 고위 금융 책임자가 이처럼 말할 정도면 미국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조짐은 2006년 말부터 나타났으나 아프간과 이라크에 정신이 빠진 부시 행정부는 적시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미국 최대의 금융회사 시티그룹과 메릴린치가 4/4분기에 근 10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자 미국의 주가와 부동산은 폭락했다. 세계의 증시도 함께 주저앉았다.

다보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온 세계가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거대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세계경제가 붕괴(meltdown)될 수 있는 조짐들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만약 경제 쓰나미가 온다면 한국경제는 소리 없이 휩쓸릴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한국에서는 정부조직법개편안을 비토할 수도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나라가 시끄럽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비록 한 달 남았다고 하나 이 가공할 사태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게 도리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훼방을 놓는 것 같은 노대통령의 처사는 너무 한가하다.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마지막 모습만은 아름답게 끝내기를 바란다. 봉하 마을에서 퇴임 대통령의 귀향을 기다리는 순박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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