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기장군 연화리 '젓병'등대에서 찍은 것입니다.(2019.12,31)
* 부산 기장군 연화리 '젓병'등대에서 찍은 것입니다.(2019.12,31)

새해 새 아침

해가 바뀌었다. 서른세 번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 속에 새해가 밝는 것이다. 절간에서 울린 범종은 1백8번이었다. 거기엔 까닭이 있다. 사람에게는 여섯 개의 사심이 있다. 탐욕스러움, 노여움, 어리석음, 교만스러움, 의심, 간악한 마음, 이 여섯 개의 마음이 각각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생각의 여섯 감각이 따라다닌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36개의 번뇌가 생긴다. 번뇌는 그러나 오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도 있었고, 그리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36개의 번뇌를 다시 셋으로 곱하면 꼭 1백8개가 되는 것이다. 이런 1백8개의 번뇌를 하나하나 모두 몰아내자고 1백8번을 치고 새해가 막 밝았을 때 마지막 한번을 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형식이라도 좋다 그렇게 매듭을 짓는 것은 좋은 일이다. 1백8개의 번뇌가 묵은해와 함께 사라졌다 해도 새해에는 또 다시 새 번뇌가 1백8개 생기게 마련이다. 새해라고 모든 게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게 묵은해로부터 연속되기 때문이다. 바뀌어지는 것은 그저 ‘캘린더’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1백8개의 번뇌가 새해라고 줄어들 것은 아니다. 1백8개의 이외의 새 번뇌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탐욕스러움, 어리석은, 간악스러움...... 이 모두는 새해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괴롭힐게 틀림이 없다.

그래도 새해란 역시 좋은 것이다. 뭔가 새로운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다. 적어도 묵은해의 온갖 괴로움이며 슬픔이 새해에는 조금이라도 덜어지기를 기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좋은 것이다.

새해 새 아침,

태양은 그다지 찬란하지 않아도 좋다. 그토록 역겨웠던 한해가 이제 완전히 과거 속에 묻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는 것이다. 꿈도 그리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 저 아직도 꿈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도 우리에겐 여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초가삼간의

소박한 꿈을 안고 살던 어버이의 후예인 것이다.

오순도순 그저 평화롭게 살 수만 있으면 그것을 우리는 천만다행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에 물들지 않고, 부정에 굽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제야의 종소리가 메아리쳐 오는 것이다.

새해 1백8개의 새 번뇌들이 싹터 오르듯 그렇게 새 아침의 서기가 퍼져 오르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해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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