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誕 이 덕 진

그는 친구의 전화를 끊고 공부도 안되는데 바람도 쐬고 여학생도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은 들떴지만 주머니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친구의 호언장담에 가지고 있는 몇 백 원으로 전철 표를 사고 전철을 탔다.

1시간 40분이 걸려 도착한 동인천역은 왠지 낮선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계탑을 물어보고 그곳에 갔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고 외딴 곳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얼른 주머니마다 손을 넣어 보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백 원짜리 2개뿐, 시계를 들여다보니 9시15분이었다.

앞이 캄캄해 왔다. 괜히 왔다는 후회와 친구 녀석이 괘씸한 생각이 겹치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10시25분이 청량리 행 막차고 10시50분이 구로 행 막차라는 걸 알게 되면서 더 불안해져 갔다.

돌아갈 차비도 없고 약속을 했으니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혹시나 나오지 않을 것을 걱정하며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백 원만 빌려달라고 손을 벌려 볼까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여학생을 소개받을 거라며 사뭇 멋을 내고 나온 차림새며 멀쩡하게 생긴 놈이 몇 백 원만 빌려 달라고 하면 미친 놈 소리나 듣지는 않을까 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생각에만 그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막차까지 떠난 역전의 셔터는 내려졌다.

"이게 진정 나에게 닥친 문제인가???" 그는 혼자 생각하며 난관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한걸음씩 내 딛기 시작했다.
"여기가 인천 ...... 서울까지 가려면 .. 어휴~~" 그는 한숨만 쉬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거리에 네온사인도 꺼지면서 차가운 바람이 몸속을 파고들어 한기(寒氣)를 일으켰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문드문 인적도 사라지고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그의 몸을 비추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그가 걷는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2시간 남짓 걸었을 무렵 움츠렸던 고개를 들고 이정표를 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부평시립공원묘지라는 팻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걸음을 걸을 수 없을 만큼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 엄습해 오는 공포감이 존재하지 않는 귀신들까지 만들어 내면서 무서움에 오금이 저려왔다.

혹시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봇대 옆에 누군가 세워둔 자전거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시정장치도 없었고 주위에 사람도 없었다. 그는 순간 자전거 곁으로 다가갔다.
"
바로 이거야 이거라도 타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얼른 자전거에 올라타고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꼭 뒤에서 누군가 "내 자전거 내놔 거기서 .. 이 도둑놈아"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두려움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형법 제 329조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법조항이 생각이 났다. 학교에서, 그리고 법전에서 지금까지 공부를 한 불법 행위를 자신이 현실에서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면서 울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앞으로 살면서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절대로 누구를 만나러 다니지 않으리라. 그리고 법조인이 되더라도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눈물 흘리며 자전거를 훔쳐 타면서 다짐했다.

물론 형법329조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그 사건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선배는 처벌 받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과 회식자리에서 공소시효를 이야기하다가 본인의 절도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눈물의 자전거를 타면서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판단하는 세상 그래서 그는 절도사건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물론 밥값도 선배가 냈다. 아마 선배의 주머니에 돈이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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