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일 하시나요?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참 시시한 생각을 가끔 한다. 이를테면 ‘희망제작소’란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가, ‘희망공장’이란 이름도 떠올려 보았을까 하는 따위의 생각이다.

작년인가, 희망제작소의 활동을 아주 조금 알았을 때 머리에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희망’이란 말은 참 마음에 와 닿았는데 ‘제작소’란 말은 좀 그랬다. 필자의 언어 감각으로는 제작소라면 철공소나 구식 공장을 떠올리게 된다.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를, 그것도 옛날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곳을 생각하게 된다.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면 이름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제작소’란 말이 고풍스러우면서도 ‘희망’이란 말을 싸안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함의가 있는 것 같다. 영화공장 보다는 영화제작소가 더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행복설계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은 박원순 변호사의 ‘맨투맨’홍보에 의해 알게 됐다. 희망제작소의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박변호사가 인사말로 이렇게 물었다.

"신문사 퇴직했잖아요. 그런데 요샌 무슨 일 하나요?”

신문에 칼럼도 쓰고, 몇 사람의 언론인들끼리 칼럼사이트를 만들어 운영도 한다. 그래서 한 달에 몇 번은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게 직장에 있을 때보다 훨씬 힘들다. 그리고 이런 저런 활동도 한다. 그러나 옛날 같이 업(業)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에 “백수입니다”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의 대답이 필자를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이끄는 또 하나의 ‘업’이 될 줄이야...

그건 사회적 손실입니다

“전문직 퇴직자들의 경험과 지식이 그냥 낭비되는 것은 얼마나 큰 사회적 손실입니까?” 박변호사의 걱정하는 인사말인 줄 알았다.

근래 이와 같은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정치인, 공직자, 언론인, 회사경영자 등 여론주도층의 사람들이 입만 열면 쏟아놓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논의와 그 대안은 별개다.

박변호사는 필자에게 ‘행복설계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꼭 참여해보라고 권유했다. 반신반의 상태로 가볍게 “그러지요”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프로그램을 담당한 김두선 연구원이 참여를 독촉하는 요지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좀 고민했다. 교육기간인 3월에 일정이 몰려 있었다. 또한 교육프로그램 참여하는 것이 필자에겐 익숙지가 않다. 필자처럼 신문기자 오래한 사람은 며칠씩 계속되는 교육프로그램엔 매우 부적합한 직업적 관성에 젖어 있다.

그래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 박원순 변호사의 특강을 들었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나 할일이 많으며 그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새로운 직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 스스로 명함에 "Social Designer"란 직함을 박고 있었다.

박변호사가 구상하는 세계를 좀 들여다보아야 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추세를 파악하는 것이 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퇴직한 전문인들이라는 말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나와 특수한 인연이 없는 퇴직자들과 대화하고 고민과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 라이프스타일이다. 퇴직자일수록 옛날 직장 동료, 동향, 동창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다. 이것이 퇴직자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게 하고 사회추세를 읽어나가는 데서 멀어지게 만든다. 생각이 다른 사람, 하던 일이 다른 사람과 만나 교류하는 것이 퇴직이후 인생을 좀 더 다양하게 사는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행복설계, "해피시니어"

이렇게 해서 행복설계아카데미 3기생으로 3월10일부터 7일간 다른 20명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침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강의를 들었다.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예상대로 강의 듣는 것은 힘들었다. 강의 시간에는 항상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클라스에서는 가장 많이 조는 수강생의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적지 않은 점심약속 제의도 거절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수강자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었다. 아힘나 대안학교와 송파자활센터 등 소위 대표적인 NPO를 현장 방문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글을 쓰면서 주로 소재로 삼았던 주류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새로운 경험이었다.

7일간의 수강을 끝냈고, 희망제작소에서 2주간 실습했다. 필자보다 훨씬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그것도 전통적 직장이 아닌 NPO여서 그런지 독특한 분위기였다. 강당에서 열린 월례조회가 인상적이었다. 동영상 감상으로 시작해서 한달간 있었던 변화와 공지사항을 재미있는 이벤트로 진행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21세기의 직장이나 모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어느 학자의 이야기가 기억났다.

필자의 교육 참여 느낌을 말하라면 솔직히 얼떨떨하다. 처음 접해보는 주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느냐는 현실적 물음과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느냐는 본질적인 내면의 물음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전은 NPO와 함께

어쨌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를 새롭게 보고 듣고 배우고 느끼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국을 산업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했던 마지막 세대의 전문직업인들이 퇴직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사실은 필자가 신문사에 있을 때부터 생각했던 문제인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박원순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면 ‘홍수처럼 쏟아진다.’ 필자는 강의 듣는 시간에 많이 졸았지만, 그래도 이 얘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대량으로 쏟아지는 퇴직자들이 ‘국가의 자원인가 국가의 문제인가’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직업적 관성이랄까.

산업사회를 이끌어온 이들 퇴직자들은 사실 ‘은퇴의 개념’ 또는 ‘은퇴의 정서’에 익숙지 않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중단되는 것이, 또 경제활동을 멈추면서 나름대로 직면하는 경제적 압박이 은퇴의 여유와 자유보다 더 두려운 존재일 수 있다. 50대를 중심으로 40대에서 60대까지 퍼져 있는 이 퇴직세대를 우리 사회가 잘 활용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손실이고 개인적 불행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사회적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국가정책 차원에서는 그 대안이란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문제는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으나 해법은 논의자체가 미약하다. 희망제작소가 그 대안을 비영리 사회단체(NPO)에서 찾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영국과 미국 같은 선진 사회에서 어느 정도 실험된 해법이라는 데서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미래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에너지는 ‘희망’이다. 희망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일이라고 본다.

행복설계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참가자에게는 희망을 싹 틔워주고, 사회적으로는 퇴직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촉진하는 엔진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_김수종/행복설계 아카데미 3기, 전 한국일보 주필]

해피시니어"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은퇴자들이 인생의 후반부를 NPO(비영리기구 : Non-Profit Organization) 또는 NGO(비정부기구 : Non-Government Organization)에 참여해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NPO·NGO에게는 은퇴자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연결해주는 희망제작소의 대표적인 대안 프로젝트입니다.

/ 희망제작소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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