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동급생과 함께 유치원 버스를 탄다.
오늘 동급생의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도 않은 심술난 얼굴을 보더니, 나름대로
위로를 하기 시작했다. 얘 엄마 말에 의하면 또래에 비해 허약한 탓에 한약을
먹이기 시작했는데, 워낙 쓴 약이라 복용 때마다 크게 애먹는단다.

딸아이는 동급생에게 이래저래 말을 붙여봐도 별 반응이 없으니까, "괜찮아? 자,
우리 같이 버스 타자. 이리 와. 내가 손 잡아줄께." 라고 말하며 친구의 손을
찾아서 잡았다. 다섯 살짜리의 속 깊은 우정에, 나도 얘 엄마도 흐뭇하게 미소짓
는 찰라 동급생은 딸아이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때마침 유치원 버스가 우리 앞에 도착했고, 서운함과 무안함으로 눈이 빨개진 딸아
이는 동급생 뒤를 쫓아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황급히 "괜찮아. 친구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거야. 알지?" 라고 말했고, 좌석에 앉은 딸아이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
를 끄덕였다.

오늘 딸아이는 조그만 좌절을 겪었다. 현실 앞에서 마음이 꺾여버린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들을 경험해 나갈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 딸은 여행
을 떠날 수도 있고 종교를 가질 수도 있겠다.

나는 오후에 서점을 찾아서 엄지공주, 피노키오, 헨젤과 그레텔을 구입했다.
[모든 것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로마의 철학가이자 사상가인 세네카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딸아이에게 좌절을 이겨
낼수 있는 지혜를 선물하고 싶다.
저작권자 © 금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