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해에 보는 세시풍속

‘돼지꿈’과 ‘뚱돼지’. 우리에게 돼지는 이같이 호감과 비호감의 양극화 이미지로 다가온다.

옛날 돼지는 제물(祭物)이자 사자(使者)로 인식됐고, 부여에선 벼슬이름으로도 쓰였다. 이런 관념은 돼지를 길상의 동물로 각인시켰다. 민속에서 돼지는 재산과 복의 근원이자 집안 수호신이다. 그 꿈은 길몽이고 장사꾼은 돼지날에 문을 열고 돼지그림을 부적처럼 걸곤 했다.

반면 돼지는 탐욕스럽고 더럽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이란 불명예도 함께 지니고 있다. 돼지가 지하국 괴물로 등장하는 설화도 있다. 속담이나 관용구에서도 욕심, 지저분함, 어리석음, 게으름을 상징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게 돼지란 복(福)과 길(吉)함, 흉(凶)과 추(醜)함이란 모순적인 등가성을 가진 동물이다.

▲돼지띠 해=2007년은 정해(丁亥)년 돼지해다. 육십갑자 중에는 정해와 함께 을해(乙亥), 기해(己亥), 신해(辛亥), 계해(癸亥) 등 다섯 번 돼지해가 든다. 돼지는 12지 중 꼴찌, 열두 번째 동물이다. 해시(亥時)는 오후 9시에서 11시, 해월(亥月)은 음력 10월이며, 해방(亥方)은 북서북(北西北)향에 해당한다.

돼지는 곧 이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시간신이며 방위신이다.

그렇다면 돼지해의 운은? 우선 모두에게 호의적인 해다. 역술에선 사업에 좋은 해로 산업도 크게 발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유롭고 편안하다. 또 돼지띠 해는 풍족하다.

돼지띠 생은 관능적이고 달콤한 생활을 좋아하는데 인생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철저히 누린다는 것이 이들의 좌우명. 애정이 풍부하고 재능이 넘치며 의협심이 강하나 흥청거리며 돈쓰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단점도 있다.

여기에다 기회가 주어지면 어느 것에나 과도하게 빠지는 경향이 크므로, 극단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에게는 힘겨운 해고 싸움에서 질지도 모르는 해이다. 모두 돼지처럼 머뭇거리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황금돼지?=올해가 60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란 소문이 번지면서 ‘골든 키즈’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정해(丁亥)년의 ‘정’이 오행에서 불을 뜻하므로 ‘붉은 돼지의 해’인데 음양오행을 더해 계산하면 황금돼지해가 된다는 게 요지다.

특히 이 해에 태어난 아이는 편안하게 산다는 속설이 무섭게 퍼지면서 젊은 부부들이 앞 다퉈 아이 갖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산부인과, 조산원, 산후조리원에 올해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엄마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올해 출산을 기다리는 예비부부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제조업체들은 황금돼지 휴대전화 액세서리, 저금통, 달력을 출시했고 의류업체는 돼지가 프린트된 유아복을 시판 중이다. 명리학자와 민속학자들은 정해년을 붉은 돼지의 해론 볼 수 있지만 황금돼지해라는 것은 황당무계한 과장이라고 잘라 말한다.

▲돼지처럼?=새해가 설령 황금돼지해라 해도 연의 두 가지 기운은 다른 여섯 가지 기운과의 조화에 따라 호불호가 결정된다. 때문에 황금돼지해란 근거 없는 속설에 휩쓸려 결혼을 서두르고 한약을 지어먹으면서 임신하려는 과도한 열풍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선 저출산 해소에 기여한다며 반기는 분위기지만, 단견일 뿐이다.

저출산은 한때 열풍이 아닌 출산기피 해소책을 통해 풀어야 할 중차대한 문제다.

어쨌든 올해 돼지띠 해를 맞아 황금에 무욕하고 순진무구한 돼지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진정한 자기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보자. 그 성패는 운이 아닌 노력에 달려있다.
정월 첫 해일인 상해일(上亥日)엔 바느질과 빗질을 하지 않았다. 바느질을 하면 손가락이 아리고 빗질을 하면 풍증이 생긴다고 했다. 검은 사람은 이날 왕겨나 콩깍지로 문지르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했다. 궁중에선 젊은 내관 수백 명이 횃불을 들고 땅위를 내저으며 “돼지주둥이 지진다”고 외치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곡식을 태워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재신과 근신에게 나눠줬다. 또 비단으로 돼지 주머니와 쥐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끈에 매달았다. 오계(五戒) 중 불사음계를 범한 결과를 문책하고 성문란을 방지하라는 약속의 징표였다.

돼지 관련 민속도 많다. 돼지를 제물로 쓰는 일은 고구려부터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조선에선 멧돼지를 납향(臘享)의 제물로 썼다. 유리왕은 도망가는 돼지를 뒤쫓다 국내위나암에 이르러 산수가 깊고 험한 것을 보고 도읍을 옮겼다. 고구려 산상왕은 달아나는 교시를 쫓다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고 그 처녀와 관계해 아들을 낳았다. 부여에선 돼지라는 벼슬이름이 있었다. 이처럼 돼지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이자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로서 신통력을 지녔다고 믿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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