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교 주변 울창한 노송들 경건함 더해

몇년 전 쏟아진 폭설 속의 범어사 전경. 눈을 이고 서 있는 소나무가 더없이 푸르다

팔송진(八松津)에서 범어사로 들어가는 아스팔트의 산길은 꼬불꼬불한 46곡각을 이루며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 늘어서 있다. 한껏 청량함을 맛보며 산새들과 함께 올라간다. 금정산 동쪽을 조양(朝陽)이라 하면 서쪽을 석양(夕陽)이라 할까.

막잠을 깬 조양을 등에 지고 범어사 동쪽 계곡에 들어서면 차츰 소나무 숲이 촘촘해 진다. 솔방울이 달린 솔가지에 조각조각 찢어진 하늘이 파랗게 걸려있다. 적막을 깨고 흘러가는 맑은 냇물을 가로질러 놓인 돌다리. 어산교(魚山橋)를 지나 비스듬히 숲속 길을 오르면 화엄도량인 범어사 입구.

13줄 석판이 깔린 길 양쪽에 울창한 소나무들이 빽빽히 서 있어 한층 산사(山寺)의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내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어산노송(魚山老松)이라 불렀다. 어산교에 얽힌 낭백 스님의 일화를 소개하면 조선 때 사찰에 부여된 부역수가 36종에나 이르러서 수많은 불자들은 부과된 부역에 종사하기에 바쁜 나날이었다.

스님은 이러한 당시의 사정을 뼈아프게 개탄하고 부역을 면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설사 금생에 안되면 내생에라도 부역을 면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하리라 마음먹고 부처님께 서원(誓願)을 다하였다.
원력(願力)을 짓기 위해 기찰부로 큰 소나무 곁에 샘물을 파서 식수를 제공하고 밭을 개간하여 과일, 채소 등을 심어 행인에게 무한정 나누어 주고 짚신도 삼아서 보시(布施)하였다.

그런데 스님이 원로하여 돌아가시게 되자 스님은 그를 따르는 많은 불자들 앞에서 세가지 과제를 던져 주었다. 그중 한가지가 내가 죽어 다시 환생(還生)한다면 나라의 고급관리가 되어 모든 관리가 다 일주문까지 와서 말에서 내리는데 자신은 어산교 앞에서 내리겠다고 하셨다.

그 뒤 스님은 열반(涅槃)에 들고 그 제자들도 늙어 낭백스님의 그 눈물겨운 원력이 성취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마침 순상국(巡相國)이라는 중앙의 높은 벼슬을 지닌 사람이 온다는 전갈을 받자, 범어사 스님들은 어산교까지 나가서 행렬을 지어 부복(俯伏)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주문까지 말을 타고 올라오는 상례(常禮)를 깨고 어산교 앞에 와서 말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를 본 제자들은 순상국 조공이 낭백스님의 원력을 성취시킨 사람이므로 낭백스님의 환생임에 틀림이 없다고 믿었다.


예부터 부정(不淨)을 막기 위해 문위에 걸어 질러매는 금줄에는 소나무와 숯과 고추를 꼽았고, 또 집안에 있는 부정을 쫓기 위해 솔잎에 물을 묻혀 사방에 뿌리는 민간의 습속이 있었다. 이와 같이 어산교의 낙락장송도 그냥 단순한 큰 소나무가 아니라 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사바세계의 부정을 막는 또 하나의 수호신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사찰(寺刹)입구에는 대개 큰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데, 이는 하나같이 그러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옛날의 어산노송은 세월이 흐르며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은 이식한 노송만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범어사를 찾아가다 찾아가다 보면 이렇게 휘어진 소나무가 눈에 밟히는 세월이 기어이 찾아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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