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물에 절인 노란 속배춧잎를 엄마 몰래 야금야금 골라먹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다. 연중행사 같았던 11월의 김장 담그는 날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고단하면서도 기쁜 잔칫날이었다.

시끄러운 수다떨기와 바지런한 손놀림은 신통하게 박자가 맞아떨어져,
한나절이면 집집마다 겨우내 반식량이 될 김칫독이 그득해졌다. 그러면
때늦은 점심을 둘러앉아 다같이 먹었다. 김이 설설 나는 흰 밥이 양푼에
고봉으로 담기고 엄마들은 손가락 끝에 빨간 물이 배도록 김치를 찢었다.

아이들은 김치 사이에서 여즉 숨을 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굴 찾기 놀이를
했다. 또래들에 비해 유독 굴을 좋아했던 나는, 찾아내는 대로 아예 손가락
으로 집어먹었다. 꿀맛이었던 것은 김치가 아니라 분위기였다. 김칫독만큼
마음이 넉넉해진 엄마의 뿌듯한 미소를 올려다보면서 나도 웃었다.

그날 채워진 김칫독들 중 절반은 동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로 배달되었다.
김장 담근 날의 엄마가 일찌감치 코까지 골며 잠이 들면, 나는 화끈거리는
손가락을 입 속에 넣은 채 우리집 김치를 어느 할머니가 먹을까 맛있어 할까
궁금해서 몸을 뒤척였다.

요즘은 한겨울에도 배추를 쉽게 구할 수가 있으니 김장 담그는 가정이 적다.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김치잔치를 해마다 벌렸던 엄마가 나에게 먹였던
것은 큰 사랑이었다. 실천 해야 할 이웃 간의 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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