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의 포커스는 섬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우리가 독도를 지켜준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를 지켜주었던 것은 독도였다.”는 내레이터(narrator)의
반성처럼, 우리들이 각각 독도 수호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객관적으로 고찰한다.
관객이 감동을 느끼는 것은 미미한 역할조차 해오지 않은 우리들의 한계를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독도에는 우리 이웃인 관리인 김성도씨 가족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고, 한국 경찰 정비대가
파견되어 있고, 기증된 우리나라 전통 삽살개가 새끼를 낳아 대를 잇는다.
그러나 소위 ‘조용한 외교’만으로는 독도를 지켜낼 수 없는 극명한 이유가 있으니,
너무나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진행되고있는“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외침(外侵)때문이다.

현재 세계지도의 90퍼센트에 독도는 ‘리앙쿠르트 암’으로,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되어있다.
저들은 세계 시장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철저히 상품화 해서 홍보하고 있다.

지금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마저 빛이 바래질 것이다. 우리들로부터 소외받고있지만 독도는
지금 철저히 분쟁 중이다.

우리의 이웃도, 경찰도, 삽살개도 독도로부터 조용히 철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내일이 될 수 있다. 뒤늦게 국제사회에서 분쟁지역으로서 재판을 받게될 때, 한국은 독도를
자영토로 인정하고싶지 않은 것 아니었냐고 세계가 반문해 올지 모른다.
어쩌면 이미 독도수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국민이 의지 박약아로 낙인 찍혀있을지 모르겠다.

영화속에서 대학생 동아리"생존경쟁"의 활약은 비록 미미할 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민간의 노력
을 상징한다. 이들은 "독도를 안아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고 몸부림친다.

울릉도의 거친 기후와 싸우며 관광객들의 핸드프린팅으로 대형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도 앞바다에 띄우게 된다. 그런데 왜 그들이 원한 손바닥 도장이 6000개였을까.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사천팔백만 겨레수를 상징하는 것도 아닌 것이
몹시 의아했다. 건국 60주년을 기념하여 6000개의 도장을 받았다는데, 이것은 시나리오 제작상의 실수라고 보아진다. 독도는 울릉도나 제주도보다 먼저 생긴 섬이며, 우리나라의 나이는 달랑 예순이 아니다.

최초의 독도 소재 영화라서 왜 우리 땅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한계만 안타까웠던 것
이 아니다. 한정된 상영관과 관객의 수가 가장 적은 상영 시간대가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독도에게만 미안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게 미안하고 미래에게도 미안할 것
이다. 다시 말해 역사를 지켜낼 수도 없고 아이들의 교육을 올바르게 펼쳐 나갈 수도 없겠다.

영화 속의 수많은 인터뷰 대상자들 중, 어느 외국인이 말한다.
"이제 더이상 한국 사람들에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칠 필요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모두가 이미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도에 대해 감정적으로 소리치지 말고, 국제사회에서 학술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독도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조사해서 국제사회에서 논리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만 우기지 말자.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
한심하고 수치스러운 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해서 며칠 몸살이 날 것만 같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인 개개인이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독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서야하지 않을까. 아이부터 노인까지, 교육자는 물론 정부 인사까지.

사랑하면 미안하다 말하지 말라고, 동해바다 파도소리처럼 독도가 철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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