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문, 라디오와 T.V, 급기야 인터넷까지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발달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
을 수 있는 미디어라는 고급스런 소통 도구까지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의 대화는 서로 통하지 못하며 크고 작은 오해를 낳고 있을까.

사람이 아닌 강아지와도 [소통]을 바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일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허공을 쳐다보며 늑대처럼 길게
울 때 강아지는 외롭다. 바닥에 얼굴까지 대고 엎드리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고,
갑자기 크게 짖는다면 경계해야 할 만한 사안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접근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는 것은 도대체 당신이 누구냐고 정체를 물어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강아지의 소리와 행동이 이해 되고나면 우리는 칭찬과 체벌, 혹은 스킨십
등의 방법으로 구체적인 소통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 인내와 노력은 필수인데, 생명
대 생명으로 공존해 나가겠다는 미래를 위한 의지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소통하지 못하면 고립되며, 결국 병이 들거나 죽게 된다.

"Don"t force your message on me. I have a message of my own."
바야흐로 똑똑해진 대중은 이렇게 외치며 기존의 일방적인 One Way식 소통을 거부한다.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만들며, 미디어의 메시지까지 비판하고 거부한다. 이들이 서로간
의 소통을 통해 사회 전체 여론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면서 새로운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정치인과 경영인 등은 참신한 소통 방법을 모색하며 나아가야 한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식 소통 방안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나라 역사도 한 번 되
짚어보자. 끈기있는 설득과 구체적인 대안에 인색하지 않았던 세종대왕식 소통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소통법 발상에 근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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