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광문은, 지금 복원되어 관광명소가 되어있는 청계천가에 사는 걸인이었다.
어느날 그는 동료들이 동냥 나가있는 동안 병든 아이와 단 둘이 움막을 지키게 되었다.

광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동료들이 돌아와서 그를 의심했다.
아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로 광문은 청계천가에서 쫒겨나게 된다.
걸인들은 아이의 시신를 두고 고민하다가 매정하게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는데,
광문이 몰래 거두어 묻어준다.

아이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것까지 지켜본 어느 부자가 그의 인간 됨됨이에 탄복하여
약종상(藥種商)에 소개한다.  이제 점원이 된 광문은 정직하고 성실했으며,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허욕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외모가 추하다고 생각하여 마흔을 넘기도록 장가를 들지 못했는데 장안에
도도하기로 소문이 난 운심이란 기생이 그의 인품에 탄복하여 스스로 몸과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광문자전(廣文者傳)]은 당시에만 파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고전이 되어 두루 읽혀내려온다.

실학자였던 연암이, 천출인 광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새로운 인물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입신을 좌우하는 것은 신분이었다. 해서 돈으로 양반을 사고 파는 등,
권모술수(權謀術數)가 판치는 사회였다.  연암은 순수하고 욕심없는 인물의 자생력 있는
인생을 그려보이며, 조선후기를 풍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가 바뀐 지금, 우리들의 수신(修身)과 입신(立身)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질만능주의가 그 옛날 신분제도보다 더 억세게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눈이 부시는 청계천가를 걷다가, 시대의 새로운 꿈과 희망이 되어줄 또다른 광문을
문득 만나고 싶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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