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대안" 농업-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생태혁명

내가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들어가는 이유
  
  다음 달이면 나도 소위 시골로 이사 간다. 무슨 대단한 생태혁명이나 사회 개혁의 꿈을 가지고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10년차 경제학 박사 한 명이 시골로 간다고 해서 생겨날 변화는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솔직히 농사를 도대체 뭘 아느냐고 하는 농림부 공무원들의 야유가 듣기 싫기도 하고, 서울에서 지역경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도로 놓고 골프장 놔야 지역이 산다는 지방대학의 소위 "지역전문가"들의 지긋지긋한 "지역개발론"의 엄포가 듣기 싫어서 시골로 이사 간다.
  
  지역 대안을 만드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그리고 농림부와 행자부가 나름대로 지역 대안을 만드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고, 또 소위 전농과 생명운동과 환경운동 단체들 그리고 대도시의 빈민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고민할 수도 있다.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두 가지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 다 요원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상황을 놓고 이리저리 생각해보면 그래도 앞으로 2년 내에 새로운 전환이 없다면 우리나라 국민경제는 어떻게 해도 파국으로 갈 것 같고 게다가 사회적 위기라는 것은 거의 폭탄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일단 내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당장 내가 땅을 사서 농사를 지을 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1년에 100만 원 정도하는 연세를 지불하면 농촌에 집 한 채 정도 빌릴 수 있는데 가끔씩 농사일 도와주고 살면 그냥 먹고 살 정도는 된다.
  
  물론 정부의 보조금 하나도 없이 자립이 가능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중국도 농촌 지역에 대해서는 일종의 변환 보조금의 일종으로 소득세를 비롯해서 세금을 면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농업 보조금을 철폐하고 도로 건설비로 돌리는 나라에서 태어난 지식인이 그나마 이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내 마음이 불편해서 서울에서 따뜻한 밥 먹고 있을 때마다 너무 불편하다.
  
  "최소한 먹을거리는 유기농으로"…국민투표로 결정한 스위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유기농이라는 질문을 던지기가 쉽지 않다. 일단 지방에서 열리는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멱살 잡힐 각오를 해야 하고, 최소한 농사를 한번도 지어보지 않아서 농업이 뭔지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의 배부른 얘기라는 따가운 눈총이 뒤통수에 꽂힐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분위기가 바뀌기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처음 가보는 농촌이라도 누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지 혹은 지역의 세력구도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걸 읽는 약간의 지혜가 생겼다. 실제 시골의 촌노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유기농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이 늘었고, 정부가 추곡수매를 공식적으로 폐지한 현 시점에서는 다른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아졌다.
  
  내가 바라는 농촌의 모습은 스위스 같은 것인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스위스가 가졌던 정도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농촌도 충분히 모색해볼 만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5년 전 비로소 국가적인 방식으로 유기농 전환을 시작한 스위스는 기본 곡물과 기본 축산물은 국민들에게 유기농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국민투표에 붙여 유기농 전환을 관철시켰다.
  
  그 결과 거의 없던 유기농이 5년 사이에 10% 정도로 늘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보조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시장에서는 화학 농산물과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국제무역기구(WTO) 체계에서도 생태 교부금이나 생태 보조금과 같은 생태적인 효과를 위한 사회적 보조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걸 할 거냐 하지 않을 거냐에 관한 사회적 의사결정의 문제인데 불행히도 우리나라 정부는 추곡수매기금이라는 농업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하면서 이걸 도로와 아파트 건설 비용으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이미 1년 6개월 전에 내린 상태다.
  
  그냥 무식하게 국제 유기농 산업의 성장 전망만 보자면, 전망치에 따라 다르지만, 12%에서 15% 정도의 연간 성장률 증가를 대체적으로 예상하고, 약간은 과장된 얘기지만 유기농 혁명이 일어나면 30% 이상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물론 이걸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유기농 이유식의 소비 비율로만 보자면 우리나라가 세계 1위라는 점은 앞으로의 국내시장 변화 방향에 대해 약간의 시사점은 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서…"
  
  서울 근교의 시흥에서 빈민 여성에 대한 복지 정책으로 농지를 확보해서 지역의 여성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월급을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를 풀고자 하면 방식은 월급제에서부터 간접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 디자인을 생각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6㏊로 쌀농사를 지으면 도시 평균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농림부의 환상이다. 현실을 모르는 이런 착각이 사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셈이다. 도시 빈민들이 농촌에 왔을 때 어느 정도의 소득과 생활수준이 가능할까 라는 계산과 어떻게 현재의 마을 공동체와 이렇게 이주한 사람들의 삶이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을까에 대해 세밀하게 정책 디자인하는 것은 어느 경제학 박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그래도 그 일을 하는 것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소망이다.
  
  참여정부가 지역감정을 없애겠다고 각 지역에 흩뿌려놓은 국책 사업과 자금들이 지금 얼마나 우리의 "마을"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 성경 속의 "가난한 사람"이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권 하의 대한민국에서는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과 국토 생태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한 방향에 놓여 있기는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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