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곤 전 금정구청장

세상이 참 편리해 졌다. 단추하나만 누르면 저절로 밥이 다 되었다고 일러주는 밥솥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귀찮으면 가스레인지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아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시장에 가면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김치에 조리가 하기 싫은 주부들에게 안성맞춤인 각종 찌개나 요리들이 알맞게 담겨져 집에서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포장되어 있다.

 그것도 싫으면 각종 정보지를 통해 날라 오는 선전지를 보고 입맛대로 골라 전화 한통이면 금새 배달되어 오니 이 보다 편리한 세상이 어디 있는가. 지난 날 된장을 담그느라 메주콩을 사다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어 그늘에 말려 띄우고 다시 소금을 풀어 된장을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김장철이면 무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판에 그것을 저리고 양념을 버무려 그늘진 곳에 보관하고 나면 주부는 온 전신이 골병들어 자리에 눕게 된다.

요즘은 철따라 맛있는 온갖 김치가 즐비하고 된장이나 간장은 쓰임새에 따라 종류별로 진열되어있고 경제적으로 따져 봐도 훨씬 산 것이 요즘 세상이니 어느 바보가 집에서 김장을 담고 된장을 담아 먹겠는가.그런데 아직 옛것을 고집하고 있는 바보가 있다.

바로 내 아내다. 바보스러울 만큼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전통을 이어가려고 고집을 피운다. 그것도 적은 식구가 아닌 점심시간이며 800여명의 식구가 밥을 먹건만 아직도 그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에는 조미료를 쓰지 않고 김장을 담고 된장과 간장 고추장에 이르기 까지 모두 직접 집에서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철마다 나오는 재료에 따라 오이지 양파지 마늘지 멸치젓갈 고추잎 장아찌 등 수도 없이 많은 짠지들을 담아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철따라 나오는 재료들을 그 시기를 놓지면 일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달력에 적어놓고 노심초사하는 아내의 모습에 때로는 그 정성이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하니 본인의 수고도 수고지만 직원들의 수고도 이만 저만이 아니건만 다행히 30여년 가까이 몸담아 있으면서 아내와 호흡을 맞춘 직원이 있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다.

 요즘 어느 사업체고 자체 식당이 있어도 용역을 주거나 직영한다 해도 모든 것들을 납품 받아 그저 조금만 손질하면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아내는 아직도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옆에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다 못해 우리도 편리하게 납품받아 제공하자고 여러번 권했지만 자신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납품단가에 맞출수가 없다며 그기에는 분명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속임수가 있다며 믿질 못한다.

 심지어 깻잎 장아찌를 담그는데 농약을 많이 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집안의 텃밭에 들깨를 심어 여름 날 햇볕아래 깻잎을 따느라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바보로 밖에는 안 보인다. 얼마나 인스탄트 음식에 대하여 예민한지 음식에 조미료가 조금만 들어가도 소화를 시키지 못해 밤새 고생하는가 하면 50여년 이상을 함께 살아도 아직 라면 한그릇 짜장면 한 그릇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탓에 우리 집 밥상에는 언제나 토속음식이 올라오고 하루 세끼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집안이다.며느리가 들어오고부터 가끔은 별다른 음식이 올라오지만 좀체 젓가락이 가지 않고 차라리 막장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니 바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런 바보 아내 덕에 내가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말 누가 바보인지 모르겠다. (20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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