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우 사진작가

“지난 20년여 새 다이어리에 중국 명나라 말기 동기창의 글을 옮겨 적으며 새해를 맞아왔습니다. ‘만 권의 책과 만 길 여행하면 모자란 자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소나무사진’의 사진작가 배병우(57)씨는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중국 문인이자 서예가 겸 화가로 중국 화단에 영향력을 미친 동기창(董其昌·1555~1636)의 예술론을 떠올린다.

예술적 재능도 타고 나야하지만 여행과 독서 없이 예술은 불가능하다는 동기창의 그 말이 사진작가로서의 삶과 작업의 동인이 돼왔다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부터 사진 촬영을 위해 국내외 곳곳을 두루 다녀서 ‘만길여행’은 어느 정도 이뤘을 겁니니다. 책이라면 그동안 사모으고 접한 책이 만권은 넘지 않겠어요.(웃음) 만 권의 책을 정독은 아니라도 제목만이라도 읽어야죠.”

실제로 그는 수시로 고향 전남 여수, 경주 남산, 제주도, 남해뿐 아니라 지중해, 캄보디아, 타히티, 독일, 스페인 등지로 각종 카메라장비를 챙겨 들고 떠나는 여행가.
또한 사진집 ‘종묘’ ‘배병우’ ‘소나무’ 등을 펴낸 그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동기인 그래픽디자이너 겸 서체연구가 안상수씨와 함께 ‘보고서’ 같은 출판물을 제작, 사진작가로서도 책 출판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미술 문화 역사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그는 이즈음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지목한다. 최근엔 스페인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고 있다.

올 들어 그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문화재관리국의 요청을 받아 2년 계획으로 세계적 관광명소 그라나다 알람브라궁전의 정원을 촬영 중. 피사체 연구 삼아 알람브라궁전 사진집은 물론, 알람브라를 이뤄낸 이슬람문명에 대한 저서도 틈틈이 살펴본다.

사진작업 중의 휴식시간을 비롯해 잠들기 직전의 침대에서나 온탕욕할 때도 책을 읽는 그에게 책은 일상의 동반자이며 친구다.

런던 사진페스티벌서 세계적 팝음악가 엘튼 존이 구입하는 등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얻는 바람에 사진작가 배병우라면 ‘소나무사진’부터 떠올리지만 작가 자신은 자신의 영원한 사진테마로 바다를 꼽는다. 80년대 중반이후 23년째 포커스를 맞춰온 소나무이전부터 그는 제주도의 바다, 여수의 바위섬들을 촬영해왔다. 지난해부터는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남해의 다도해풍경을 본격적으로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는 “여행은 일상의 연장”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책”이라고 말한다. 독서는 그의 삶뿐 아니라 사진작업에도 반영돼 왔다. 사진인생의 큰 틀도 책으로부터 다져왔다는 이야기다. 젊은 날 크레타섬을 찾아 그리스로마신화의 흔적을 좇고, 장 그르니에와 카뮈의 명상적인 글에 매혹당하면서 한동안 지중해에 빠졌다.

중학생 시절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고 이상향 섬을 꿈꿔온 바닷가 출신의 사진작가. 그에게 남해 시리즈는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유토피아 섬에 대한 열망의 연장이며, 작가로서의 평생의 테마다. 얼마 전 고향 여수에 마련한 작은 아파트는 목포~충무 사이의 남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한 작업의 본부이자, 코엘류의 ‘연금술사’ 등을 읽으면서 바닷가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뒤 실행한 작은 출발인 셈이다.
(출처:5월28일 문화일보 "국내인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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