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철이 덜든 고등학교 시절 국립마산요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교통이 편리해졌지만 1950년대만 해도 마산의 변두리 가포바닷가 한쪽 숲속에 자리 잡아 하루에 두세 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외딴곳이라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당시 환자들 세계에서는 죽음의 고개 또는 영영 돌아 갈수 없다는 뜻의 아리랑고개 넘어 자리 한 이곳은300여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지만 모두가 죽음을 목전에 둔 폐결핵 환자들이라 그 삭막함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곳이 얼마나 처절한 곳인가는 입원하는 날 자신의 장례비를 예치해야하는 곳에 나를 데려다준 아버님께서는 집에 연락하려 애쓰지 말고 오직 안정에 열중하라고 타 이르며 돌아가셨다.

이곳은 24시간을 침대에서 생활해야 할 만큼 철저하게 안정을 취해야하는 병원규칙 때문에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그렇게 타 일렀고 나는 아버님 말씀대로 집에 연락도 하지 않고 오직 요양생활에만 충실하였으나 떠나오기 전날 그렇게 눈물 흘리며 안타까워했던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는 병원생활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열심히 요양생활하고 있다는 안부편지를 띄웠다.

며칠이 지나 시장에서 누님을 만나 나로부터 잘 있다는 편지가 왔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편지로 나를 크게 나무라셨다. 당시 통신수단이라고는 오직 편지뿐이던 시절이라 집에 연락하려 애쓰지 말라는 아버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그동안 편지 한통도 드리지 못한 나의 잘못을 크게 뉘우친 적이 있다.

결국 아버님의 말씀은 집에 소식 전하느라 애쓰기보다는 안정을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건만 하시는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린 내가 얼마나 바보인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얼마 전 TV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다.

사회자가 환갑잔치에 대하여 의견을 물으니 며느리 쪽에서는 모두들 요즘 100세 시대에 환갑잔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들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 쪽에서는 그래도 주위에서 환갑잔치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며느리가 어머니께서 그만두라고 하시지 않았느냐고 하자 말이야 그렇게 해도 마음속으로는 해주기를 바랐다고 했다. 이것이 부모의 솔직한 마음이다.

그것을 자식들이 헤아리지 못한다.매사가 이렇다.

 모두들 100세 시대라 하지만 그건 젊은 세대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이미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그것이 먹혀들지 않는다. 주위에 90을 넘은 분들이 있지만 그분들 대다수가 이미 쇠잔할 대로 쇠잔해 병석에 계시거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분들이 대다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수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게 올바른 삶이기에 단순히 생명이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환갑이나 칠순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큰 의미를 주건만 젊은 세대들은 자기네들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고들 있다.

체면상 부모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드리는 자식들이 문제다. 자식에게 부모는 체면상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어쩌면 그들도 부모님이 체면상하시는 말씀인 걸 짐작하면서도 자신이 편하고자 그 말을 믿으려는 건 아닌지.

제발 부모가 자식에게는 거짓말쟁이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 해 줄 날이 언제쯤 오려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이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도 그 마음 변치 않을까? 더 이상 당신의 어머님이 생선대가리나 꼬리가 맛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드리고 자신은 몸통을 먹고 어머님에게 생선대가리를 권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자.

지금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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