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 일생을 살아감에 세분의 스승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스승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생에서 삶의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을 일컫는 말로 누구나 자신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영향을 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을 세분만 모실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니 올바른 스승을 만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70의 나이를 넘긴 지금까지 두 분의 스승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여기며 과연 마지막 스승님은 어떤 분이실까 늘 궁금했었다.  어쩌면 그 세 번 째 스승님이 이미 내 곁을 다녀가셨지만 우매한 내가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첫 번 째 스승님은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시다.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 까지 다니다 부산으로 이사 오느라 내 기억에 3,4학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오죽했으면 지난 날 다녔던 시골학교와 부산의 초등학교를 찾아가 내가 언제 전학 왔으며 몇 학년 때부터 다니게 되었는지 알아보았더니 공교롭게도 두 학교 모두 학적부가 소실되어 확인 할 길이 없어 내 궁금증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부산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고 그때의 담임이셨던 정 동석(鄭 銅錫) 선생님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음은 그 분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스승님이시기 때문이다.

갖은 병치레로 왜소하기 그지없는 내가 그것도 학년 중간에 전학 온 나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보살펴 주신 스승님이시다. 내성적이고 남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자 졸업식 날 나에게 재학생 대표로 송사(送辭)를 읽게 해 주신 스승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모두들 다 가는 근처의 중학교가 아닌 일류중학교에 보내야한다고 권하시어 내 학문의 길을 열어주신 스승님. 그 분의 덕택으로 나는 소위 남들이 말하는 일류학교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내 꿈을 펼칠 수 있었기에 나는 그분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나에게 두 번 째 스승님은 우리 사업체의 초대 대표이사이시며 개인적으로는 장인어른이신 영파(映坡) 김 기석(金 琦石) 선생님이시다. 어린 나이에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가정의 단란함을 잊고 모두가 그르려니 여기며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내가 건강마저 나빠져 학업을 중단하고 수양 차 산사(山寺)를 찾았을 때 그곳에서 만난 분이 바로 영파(映坡) 김 기석(金 琦石) 스승님이시다.
 

처음에는 스님께서 가정을 가지셨기에 거부감이 없지 않았으나 모두가 꺼려하고 기피하는 나를 따뜻이 맞이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깊은 사랑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스승님을 만나 나는 가정의 단란함을 보았고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법문(法問)을 통하여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정도(正道)를 배웠고 그분의 과거사(過去事)를 통해 사상을 배웠고 그분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존경(尊敬)을 배웠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아픔을 지나치지 못하시고 불의(不義)를 보면 어떠한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분의 용기에 고개가 숙여졌다. 누구보다 강인한 그분이 사모님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 먼 산 바라보시며 눈시울 적시시던 그 애틋한 가족사랑에 내 가슴마저 뜨거워 졌었다.

많은 형제들 중에 나를 택하여 비록 빚더미에 쌓인 사업이지만 가업을 물려주셨을 때 나는 그 뒤에 닥친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스승님의 큰 사랑에 항상 감사했었다. 그러기에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걸 여기에 바치고도 모자라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다 그것도 용서되지 않아 빚잔치를 해야만 했던 극한상황에서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어려움 있을 때 마다 스승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이제 법인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지금
나는 인생 전부를 여기에 바쳤고 그 결과 스승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업체로 발전시켜 다음세대로 이어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세 번째 스승님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곁에 와 있는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못나고 모자라 영영 알아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운 할까.때로는 그분이 내 아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혹간 내가 옆길을 걷거나 마음이 흐트러지면 항상 곁에서 바로잡아준 것이 나의 아내다. 병약하여 평생 병치레하며 살아온 내게 건강을 회복케 하였고 생사의 갈림길 마다 내 손을 잡고 나보다 더 아파하는 아내가 내게 3번째 스승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평생 내 곁에서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며 오직 나를 위해 살아온 아내를 곁에 두고 내가 왜 엉뚱한 곳에서 스승을 찾으려 하는가.

그런 내가 참 바보다.
아니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난 놈인가

그러나 나는 차라리 아내가 나의 3번째 스승이길 원한다.
그러면 나는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바보인가.
나는 바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고 이를 부끄럽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아니 그러니 바보 남편인지 모른다.
바보 남편.
나는 그래도 좋다.
그래서 나는 바보다.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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