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오래간만이다“
“어서 온나 니 참 오래 간만이구나 그래 우째 지냈노?”
“야 임마 이리 와봐라, 이 자식아 와 그동안 얼굴보기가 그렇게 힘들었노. 어디 갔더나?”
“야 임마 오래간만이다 손이나 한번 잡아보자,
가만있자 니 이름이 뭐더라
그래 맞다 니가 하도 오랜만에 나오니까 이름까지 까 묵었다 아이가. 여기앉아 술이나 한잔 받아라“

고기 굽는 연기가 방안에 자욱하고 여기저기서 서로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좌중이 떠들썩하다
나도 오랜만에 동기회 모임에 나갔던 날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젊은 날은 젊은 날 대로 공직에 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나가지 못했기에 낯선 얼굴들이 눈에 띄었지만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야 이 새끼야”
“임마”
“저 새끼는 ---”
모임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온통 욕 지껄이고 쌍소리뿐이건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천정을 찌른다

이제 모두 고희를 넘긴 나이
젊은 날 청운의 꿈을 안고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많은 친구들 ---.
이름세자만 대면 누군지를 알 정도로 자신의 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던 그들이 이제는 세월 앞에 어쩔 수 없는 2인자가 되어 여생을 조용히 보내는 친구들 ---
이제는 의원도 장관도 총장도 장군도 청장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어 모두들 학창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 뿐이다.

자기 할 일이 있거나 취미생활이 있어 열심히 시간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생기가 돈다.
세월이 무정하여 그 자리에 분명 목청을 높이며 좌중을 휘어잡고 있어야 할 그리운 친구들이 세월 저쪽으로 비켜간 현실 속에서
그래도 허물없이 욕지거리하며 술을 권하고 마음껏 취해도 용서가 되는 자리.
사회가 붙여준 수많은 존칭과 명예도 모두 벗어놓은 체 그저 “임마” “절마”로 통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70을 넘긴 친구가 회장과 총무를 맡아 남들이 마음껏 먹고 있는 고기 한 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친구들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래도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기에 멈추게 할 순 없었다.
뜰에 나오니 친구 한명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는 나더러 함께 가자며 자기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무심했던 세월 동안 그 친구는 병으로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 내 손을 잡고 싶다고 했다.

너무도 야위어버린 친구의 손을 잡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뜨거운 정을 느꼈다.
참 멋있는 친구였는데, 음악을 좋아해 악기를 다루며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동기회의 분위기를 휘어잡던 그가 이렇게 변하다니 ---.
일곱 살 어린 꼬마의 이빨을 빼주고는 술 먹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주 유모러스 한 그 친구는
내가 첫 시집을 내었을 때 졸작<밤>을 다른 친구에게 작곡을 부탁하여 우리들에게 함께 부르게 했던 친구다.

그래도 그는 조금도 굴함 없이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고 있는 모습이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다.
지하철을 타야겠다며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손을 마주잡고 걷는 동안 친구의 말속에
한 번도 자신에 대해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밝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동안 모두가 끝난 양 무료하게 지내온 나 스스로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래 자네는 그동안 멋있게 살았지 않는가.
그리고 지금도 자네의 이런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
20여분을 걸어 지하철 역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려니 그날따라 왜 그리 계단이 길고 깊던지 참 멀고 힘들게 느껴졌다.
하루 빨리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아무 불편 없이 이용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며
가급적 내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친구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가슴을 울렸다.

마지막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사라지는 친구에게 조심해서 가라며 손을 흔들던 내 손이 떨려 옴을 느끼며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참 좋은 친구인데,
부디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마음속으로 두 손을 모아 보았다.
참 소중한 하루였다.
그래서 친구가 좋은가 보다. (201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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