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이 글은 문화일보 11월 23일자 박용학/논설위원이 글이다. 이 시대를 지켜온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에 대한 글이어서 읽어보시라고 편집한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어록 중 백미는 단연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직역하면 ‘큰길에는 문이 없다’, 의역하면 ‘올바른 길을 가노라면 거칠 게 없다’는 의미다. YS의 좌우명이자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치인생 흔적이 배어 있는 곳곳엔 늘 그가 직접 붓으로 휘둘러 쓴 ‘大道無門’ 휘호가 걸려 있다.

대도무문을 둘러싼 여담도 적지 않다. 이 사자성어가 출처로 알려진 ‘무문관’에 나오는 글귀 의미와 다르다는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송나라 선승 혜개 스님의 수행 이치가 담긴 이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대도무문 천차유로(大道無門 千差有路·대도에는 문이 없으니 갈래 길이 천이로다) 투득차관 건곤독보(透得此關 乾坤獨步·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 대도란 깨달음의 길을 의미하는데, YS가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얘기다. 정치학자 박훈탁 박사는 저서 ‘위험한 정치경제학’에서 “이처럼 특별한 뜻이 없는 이 휘호를 YS가 자꾸 쓰는 걸 보고 그가 단순반복 작업에 뛰어난 사람임을 단번에 알았다”고 했다.

대도무문 통역 관련 일화도 회자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YS가 이 글을 일필휘지해 클린턴에게 선물하자 그는 당시 박진 공보비서관에게 그 내용을 물었다. 박 비서관은 당황한 나머지 직역해서 “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대도에는 문이 없다)라고 답했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번엔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했다. 그래도 반응이 신통치 않자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라고 했더니 손뼉을 쳤단다. 그의 글씨체도 화제를 뿌렸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YS가 대도무문을 하도 많이 써서 그의 글씨체를 아예 ‘대도무문체’로 명명했다. 구본진 변호사는 저서 ‘필적은 말한다’에서 “굵은 체 정사각형 형태로 한지 전체를 메우는 것에서 올곧고 통 큰 분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 토론회에서 “매사에 당당하게 처리하는 YS의 대도무문 철학을 존경한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 조문록에 “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이들이 ‘YS식’ 대도무문 정신을 오롯이 계승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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