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夢誕 이 덕 진

그는 세상이 싫었다. 이렇게 된 자신이 더 싫었다. 딸아이 얼굴이 떠오르면서 괴로웠다. "그래 죽자 나 같은 놈을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는 애들한테 더 이상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말고 죽자" 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리에 일어나 입구를 향해 걸었다.

걸을 때마다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소리가 났고 손을 넣어 보았더니 오백 육십원이 남아있었다. 누군가 지폐만 가져가고 동전은 가져가질 않은 것이다. 그는 방향을 돌려 개찰구를 향했다. 동전에 맞는 구간 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지하철 타는 곳으로 내려갔다. 지하철이 오면 달려들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 타는 곳에 다다를 쯤 지하철이 멈추고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대편 선로에도 전철이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하철이 가고 나면 다음에 오는 지하철에 뛰어 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플랫폼에서 다음 지하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하철들이 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새벽바람은 매서웠고 추웠다. 결국 그는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지하철의 자리를 잡고 앉자 문이 닫히고 첫 지하철이 굉음을 내며 선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역을 지나고 지하터널을 빠져나와 용산을 지나고 대방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강이 보고 싶었다. 대방역에서부터 여의도까지 맨발로 걸어 고수부지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는 한강을 걸었다.

예전에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유람선이 있는 곳 그곳을 지나 마포대교에 이를 쯤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그 옆에 앉았다. 낚시를 하던 사람은 낚시대를 한번 던지기 위해 묶고 두었던 끈을 풀고, 낚시대를 던지고나서 다시 묶고 낚시대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고정시키는 일을 반복했다.
"저기 아저씨 낚시대 뒤에 끈은 왜 매달아 놓는 겁니까?"라고 그가 물었다.
"그거야 고기가 걸릴 때 차고 나가지 말라고 묶는거 아닙니까.."귀찮은 듯 낚시꾼이 말했다.

그때 그는 실내 야구장의 타이어를 돌려 공이 나오게 하는 원리가 생각이 났다. 낚시대의 원리가 앞은 가늘고 뒤가 굵은 것을 보고는 회전하게 해서 앞으로 끌고 가면 물리고 위로 올리거나 뒤로 당기면 낚시대가 쉽게 빠져 불편하게 끈을 잡아매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낚시꾼에게 그 원리를 설명하고 그렇게 만들면 어떻겠느냐 물었다.

그리고는 한강에서 낚시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물어보았다. 반응은 좋았다. 그런게 있으면 당장이라도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시흥시에 있는 낚시용구 제조회사가 생각이 났다. 언제인가 그 회사가 만든 제품을 수출 대행 해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런게 있으니까 개발해 보라고 말해 주고 죽을 생각이었다. 지하철 표를 끊고 남은 육십원으로 그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장은 그를 너무 반갑게 대했고 당신을 찾았는데 전화 주어서 고맙다며 데리로 오겠다고 했다. 그 회사는 그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는 브레이크 받침대를 국내 최초로 개발을 하는데 성공을 했다. 현재 낚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브레이크 받침대는 그렇게 탄생을 했고 세계 30여개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제품에는 5356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딸아이가 그에게 준 돼지 저금통의 금액 오만삼천오백육십원 ..........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로또복권을 산다. 당첨된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비좁고 낡은 집에 살다가 당첨이 되면 강남의 00팰리스의 넓은 평수에 외제차, 좋은 음식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으니 인생이 뒤바뀌는 역전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역전이 아니고 반전(反轉)이다. 역전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형세에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그 형세를 바꾸는 것, 이것이 역전(逆轉)인 것이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되면 인생역전을 한 것처럼 로또 복권을 판매하는 편의점 마다 인생역전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역전과 반전의 중요한 차이점은 노력과 스스로가 들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권투선수가 실컷 얻어맞고 지고 있다가 자신이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면 KO다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역전승 했다고 하지 않는다. 상황이 변한 것뿐이다.

이처럼 상황이 갑자기 변한 것을 반전(反轉)이라고 하고 그 상황을 스스로 변하게 한 것을 역전(逆轉)이라고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도 역전승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역전의 인생, 이것은 살아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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