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동서양 건축미를 주제로 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옛 성(城)은 가까이 접근할수록 길이 좁아진다. 거의 성문에 접할 때면 말이나 마차가 1열종대로 갈 수밖에 없을 정도다. 성채의 방어를 쉽게 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성채의 방어 개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성들이 주변을 둘러가며 해자(垓字)를 설치해 놓고 있다. 그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 정문과 연결돼 있는 다리 외에는 접근이 차단된다. 놀랍게도 서양과 멀리 떨어져 문화 교류가 전혀 없었던 일본의 옛 성들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옛 저택은 정반대다. 정문에 다가갈수록 되레 도로폭이 넓어진다. 방어 개념보다 기하학적 미(美)가 우선이다. 즉 멀리 떨어져서 보면 원근법에 따라 접근로의 폭이 일정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판국이니 상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해자는 처음부터 생각하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년 2월 퇴임 이후 돌아갈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사저가 서서히 골격을 드러내고 있다. 저택의 면적은 3991㎡로 알려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국민주택의 실면적이 100㎡ 안팎임을 감안하면 결코 좁지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타운은 여전히 땅에 목마르다는 식이다. 친인척과 측근들의 땅과 주택들이 다시금 사저를 뱅 둘러싸고 있다.

사저 맞은 편에는 대통령 생가가 위치해 있는데 이 집은 지난 2월 대통령의 고교 동문인 강 모씨가 주변 시세보다 4~5배나 비싼 가격으로 사들였다. 사저의 오른쪽은 경호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뒤편 임야지대는 대통령 후원자인 박 모 회장이 이사로 있는 건설업체 대표의 소유로 돼 있다. 왼편으로는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와 노건평씨의 처 소유 토지가 연이어 포진해 있다.

마치 대통령 사저를 둘러싸고 사주경계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정도면 민간인의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저 정면에는 키가 6m 이상인 소나무 10그루까지 심어져 있다. 사주경계권 밖에서조차 가능한 한 일반인의 시야를 차단하겠다는 뜻일 게다.

이쯤 되면 아무리 봐도 ‘참여저택’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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