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암스님 15년간 승려생활 환속성명
"청빈하고 뜻있는 불제자들은 갈 곳이 없다"

지난 12월22일 불교신문 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한 소암스님이 "산문을 나서며"란 제목의 환속성명서를 발표했다. 소암스님은 1961년 부산 선암사 득도 범어사 수계(은사 엄성호 선사, 계사 하동산 선사, 법사 윤월하 대종사)했다.

그 후 범어사 청암사 전통강원 경전수학, 수도암 벽송사 망월사 상원사 선학원 동화사 통도사 등의 선원에서 참선수행, 인도, 중국, 티벳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수련하는 등 15년간 만행을 했다. 동국대, 부산대, 경영대학원을 수료 했다.

불국사 범어사 동화사 선학원 국장을 역임했다. 불교신문 논설위원 주필도 역임했다.민주화 운동 경실련 환경운동 등을 해왔다. 부산 불교대표로 활동 민추협 김대중 김영삼 총재 자문역, 동아시아 불교문화연구소장(저서 시, 수필 불교사회 평론집, 명상집 17권)을 역임했다.

15년간 불교 내에서 활동해왔던 소암스님은 그가 직접 쓴 환속 성명서에서 "가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1천년이상을 민족 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국가융성의 토대가 되었던 불교가 혹독한 조선조 숭유억불 500년을 거치면서도 민중불교의 호국안민정신이 살아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특히 해방정국이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 등을 일방적으로 지지한 조계종단의 업보는 오늘날의 종권쟁탈과 내부분열로 이어져 국민들의 신뢰는 상실하고 신도들의 불신감은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면서 "청빈하고 뜻 있는 불제자들은 갈 곳이 없고 기득권에 찌든 돈, 권력, 종단감투에 눈먼 부패하고 타락한 승려들이 종단과 전국사찰을 주도하고 점령한 결과 이 나라의 국민들과 지도자들은 찬란하게 빛나던 1천년 호국, 민중문화 전통의 한국불교사를 망각하고 한낱 식민 지배를 위한 서양문화종교에 의탁하면서 사회분열 민족반목의 약육강식의 논리만 팽배해졌습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환속성명은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사회, 5천년 문화민족으로 자존심과 구심점이 상실되어 망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교지도자들은 오직 마음밖에 없다는 선불교의 관념과 돈과 권력에 의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어 희망과 비전이 사라졌으며 불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들이 또한 중생구제와 시대정신에는 눈감고 오직 탐욕과 교만으로 개인과 조직의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는 환속성명은 결론에서 "무거운 절보다 가벼운 중이 떠나라는 교훈에 따라 불교 종단 계혁은 후세의 시절 인연에 맡기며 더 넓은 세상에서 신불교운동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원로대덕과 도반 선,후배 불자들께 널리 참회 드리며 종단불신과 건강, 생활고 등으로 더 이상 산중승려로서 수행하기 어려운 점을 큰 자비와 지혜로 섭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하소연했다. 다음은 소암 구봉의 환속 성명서 전문이다.

소암 구봉의 환속 성명서 전문
본인 소암 구봉(昭菴玖峰)은 이제 45년간의 산중중노릇에서 세속의 사람노릇을 하고자 제불보살께 엎드려 참회하고 조개중단의 원로대덕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1996년 불교신문에 광고의 형식으로 조계종 공직은퇴 성명서를 낸 바 있으나 (당시 대한불교 조계중 불교신문 수석논설위원) 법사이신 통도사 방장 월하 月下 대종사로부터 하산 下山 승인을 받았지만 종단의 미래를 걱정하신 월하 대종사와 중진원로 스님들의 간곡한 만류로 보류해 왔습니다.

참다운 종단개혁과 새로운 불교정화불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하고 동시에 잘못된 한국불교를 바로 잡는데 기여하겠다는 원력과 사명감으로 1998년 조계종 개혁종단에 적극 참여했으나 (단식 및 6개월 참여) 김대중 정권과 야합한 조계종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방해와 음해로 실패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경향각지로 다니면서 세상의 흐름과 종단의 변화를 지켜봤으며 각종 문중파벌과 이해집단, 특히 정치 권승들의 종단 장악 시발점인 1994년 자칭 조계종개혁종단이 출범하면서 세속정치를 모방한 선거제도를 도입한 결과 근대불교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금권정치가 조계종을 파멸의 나락으로 이끄는 것을 보면서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승은 경허 만공선사등의 청정선 불교가풍을 종지로 하는 조계종단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장 원효 의상도선 대각 보조 일연 무학 신돈 서산 사명 초의대사의 호국안민과 민중불교를 계승한 구한말과 일정 때 의 항일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바친 항일민족불교사상가인 이동인 이담회, 오성월, 한용운, 김법린, 김구하, 김성숙, 백용성, 최범술, 박응송, 스님 등에게서 배운 관념적이고 현실 도피적 불교가 아닌 중도 융합화쟁의 불교사회사상을 현실 세상에 구현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가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1천년이상을 민족 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국가융성의 토대가 되었던 불교가 혹독한 조선조 숭유억불 500년을 거치면서도 민중불교의 호국안민정신이 살아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특히 해방정국이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 등을 일방적으로 지지한 조계종단의 업보는 오늘날의 종권쟁탈과 내부분열로 이어져 국민들의 신뢰는 상실하고 신도들의 불신감은 극도에 달하고 있습니다.

청빈하고 뜻있는 불제자들은 갈 곳이 없고 기득권에 찌든 돈, 권력, 종단감투에 눈먼 부패하고 타락한 승려들이 종단과 전국사찰을 주도하고 점령한 결과 이 나라의 국민들과 지도자들은 찬란하게 빛나던 1천년 호국, 민중문화 전통의 한국 불교사를 망각하고 한낱 식민 지배를 위한 서양문화종교에 의탁하면서 사회분열 민족반목의 약육강식의 논리만 팽배해졌습니다.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사회, 5천년 문화민족으로 자존심과 구심점이 상실되어 망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교지도자들은 오직 마음밖에 없다는 선불교의 관념과 돈과 권력에 의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어 희망과 비전이 사라졌으며 불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들이 또한 중생구제와 시대정신에는 눈감고 오직 탐욕과 교만으로 개인과 조직의 세력 확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무거운 절보다 가벼운 중이 떠나라는 교훈에 따라 불교 종단 계혁은 후세의 시절 인연에 맡기며 더 넓은 세상에서 신불교운동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원로대덕과 도반 선-후배 불자들께 널리 참회 드리며 종단불신과 건강, 생활고 등으로 더 이상 산중승려로서 수행하기 어려운 점을 큰 자비와 지혜로 섭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6년 12월 22일 동짓날 (불기(2550년) 소암 구봉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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