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어사 단풍이 절정입니다. 이 사진은 100mm마이크로 렌즈로 촬영한 것입니다.
11월은 정체가 아리송하다. 소속도 분명치 않다. 가을과 겨울의 고빗길에 있으니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11월은 저물어가는 가을이다. 그래서 晩秋라면 11월을 말한다. 그러나 밝게 갠 날이어야 가을의 서정(抒情)이 느껴진다. 을씨년스럽게 잔뜩 하늘이 찌푸린 날이면 바로 겨울의 황량(荒凉)함을 안겨주는 것이다.

같은 날씨도 사람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또한 똑같이 가을을 잘 노래하지만, 서양의 詩人들은 감미로운 낭만을 안겨주는 10월을 즐겨 부른다. 여기 비겨 한국의 시인들은 예부터 11월을 즐겨 불렀다,

청승맞은 생리 때문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구슬진 심경에 젖어 들게 하는 일들이 많았고, 또 그런 심경에는 11월의 계절이 제일 어울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된 다음에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 이숭인(李崇仁)에게 이런 詩가 있다.  /그대 못 본지도 오래였구려. 하마 가을바람 쓸쓸히 부는데, 새로 지은 詩 한편은 잘 읽었다만 이 몰골 뉘라서 가여워하리...../
이 詩 속의/가을/은 분명 11월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게 도은(陶隱)의 심경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端宗(단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讓寧大君(양녕대군)도 이렇게 노래했다. / 아아 임은 어디로 가셨는가. 구름도 애닮이 감도는 영월에 텅 빈 10월의 밤하늘을 향해 야속함을 울부짖는 이 마음이여.......,/
단종이 꼭 음력 10월에 죽었는지 얼핏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쩐지 꼭 그랬을 것만 같다. 또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종의 죽음을 애도 하는 시는 꼭 11월이라야 제일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화(士禍)에 말려들어 희천(熙川)에 유배되어 있던 金宏弼(김굉필)의 다음과 같은 시도 陰(음) 10월에 지은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가히 사노니 오가는 이 없고 밝은 달만 쌀쌀히 비취오누나.
내 生涯(생애) 어떤 가을 알고 싶거든 앞 강물 뒷동산에 물어나 보렴./

우리도 어느덧 11월 중순을 넘어 들었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문득 두장 밖에 남지 않은 달력에 눈이 가면 갈피 잡을 수 없이 구슬진 感傷(감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름답던 단풍도 이젠 노란 색깔로 바뀌고 그나마 다 떨어져가며 있다. 이슬을 담은 菊花(국화)국화의 淸楚(청초)함도 텅 빈 들에 홀로 핀 장미꽃의 오만스러움도 모두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횟된 앙탈 같게만 보이는 그런 11월이 깊어만 가고 있다.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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