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쓰기 위해 며칠 새벽녘 해운대 바닷가에서 해매다 운 좋게 만난  아침해,

# 물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시내도 되었다가 바다도 되었다가, 마침내는 구름이 됩니다. 그러다 또 다시 빗물로 내려오곤 하지요.

 우리 또한 살아가는 동안 꽤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활이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변해야 잘 변하는 것인지 그게 항상 의문입니다.

 # 인도 사람들은 인생을 4분기로 나누어서 5분기에는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입산수도를 한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모두 자립하게 되었으니 육신의 사명은 끝났고 영혼을 구하는 시기가 바로 이3분기라고 믿고 있거든요.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영적인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4분기에 들어가는데, 이때는 유랑생활을 하다가 ‘바하나시’에서 인생을 마치는 겁니다. ‘바하나시’란 갠지스강가의 성지를 말하는데, 그네들은 갠지스 강을 영혼의 젖줄이라고 할 만큼 신성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한 뒤에는 윤회법칙에 의하여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그네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다시 수도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다는 생각을 갖고 말이지요. 이런 걸 보면 그네들이 삶에 있어서 연혼의 해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에서는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군요.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인도 사람들처럼 따로 수도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노력,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바로 수도생활이 되지 않을까요?

 # 살아가면서 우리는 변화의 역기능을 경험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애초에 지니고 있었던 순수함이 점점 사라진다든가 더욱더 현실적으로 변한다든가 하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며 쓴 웃음을 지을 때도 있습니다.

변화엔 이처럼 역기능적인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하되 좋은 쪽으로,
조금 더 발전적인 쪽으로 변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생활태도가 될 때 그 사람은 점점 더 참다운 인간으로 성숙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 머물러 있는 사람보다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꾀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본보기로 삼습니다. 또한 우리는 크든 작든 간에 변화를 원하고 새로움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두려움도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들은 바삐 걸어가고 있는데 자기만 한 곳에 머물러 있다면 그건 퇴보일 뿐 형상 유지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변화, 그 새로움을 위해서라면
노력과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기를......, (2014.1.1. 새해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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