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고을 원님입니다. 감싸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밝은 이야깃거리 보도해 주소”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런 저런 쑥덕거림이 금정구의원 몇 분 입에서 흘려 대며 하는 소리다.

본디 인간은 누구나가 착하게 태어났다고 한다. 그것이 천성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세속에 찌들어 나쁜 버릇에 물들어 착한 천성도 일그러지고 만다. 그런 천성은 그대로 덮어 두면 사회악이이라는 돌림병으로 번지게도 된다.

그런 사회악을 다스리는 것으로 법이란 게 있다. 하지만 법만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사회악의 싹’이 있다. ‘사회악의 싹’을 미리 도려내는 구실은 어디서 하고 있는가. 종교가 있고 교육이 있고 또 언론이 있다.

종교는 관용하고 교육은 미래를 밝히는 빛으로 사회를 바로잡게 된다. 그렇다면 당장의 잘못을 무엇으로 바로 잡는가. 그것을 일깨워 바로 잡아 나가는 구실은 어디서 하는가. 그건 언론 곧 신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신문 없는 정부인가 정부 없는 신문인가? 그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다그쳐 물어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 그런 신문의 기능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비판 기능이다. 우리 금정신문을 겨냥해서 금정구의원 몇 분이 뱉어내고 있는 불편불만은 그런 신문의 기능을 전혀 모르는 소리들이다. 이 기회에 ‘쓴소리 곧은소리’자는 분명히 밝혀둔다.

‘금정신문은 홍보기관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지역신문이다.’ 흔한 말로 ‘공자(孔子) 앞에서 문장을 쓴다. 더니, 지방의회 활동을 통해 귀동냥 좀했다고 지껄이면 아무 소리나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귀동냥하겠거든 제발 똑 바로 할 일이다. 오죽해야 ‘쓴소리 곧은소리’라고 이 글 마당 이름을 달았겠소. ‘귀에 거슬린 말이 사람에게 이롭고, 입에 쓴 약이 몸에 이롭다.’는 가르침도 마음에 새겨둘만 하잖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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