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조랑말이 청마의 해 설날을 앞두고 희망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월1일을 ‘한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은 세계일율(世界一律)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는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습관이다. 인종과 계급, 종교등이 복잡한 인도에서는 무려 12종의 력(曆)이 사용되며 정월도 따라서 열두번이나 있다.

고대‘페르샤’는 겨울의 끝을, 중국은 입춘을, ‘그리이스’는 여름의 (지금의 7월) 첫 만월을 새 해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한(漢)의 고조는 자기가 천하를 평정한 10월을 세수로 선언(BC 206년)하고 군신들의 축하를 받았었다.

그것을 1월로 고친 것은 무제(武帝)였다.
우리는 신정을 ‘신춘(新春)’이라고도 한다. 필경‘ 입춘정초(立春正初)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의 캘린더(양력)로 보면 엄동(嚴冬)이 한고비에 이르렀을 무렵이 으레 그 ’신춘‘이 되어 다소 위화감을 갖게도 된다.

그러나 ‘신정’도 좋지만, ‘신춘’이라면 한결 마음이 따뜻하고 기분도 신선해 지는 느낌이 든다. 비록 착각일망정 기분은 그게 아니다.

올해의 절후를 보면 설날 지내고 4일 만에 입춘이다. 음력으로는 정초와 신춘의 감각이 꼭 맞아 떨어진 셈이다. 요즘은 날씨마저 매운기가 가셔서 바람 속엔 어느 곁에 봄의 숨결이 묻어 있는 것 같다.

설날엔 상가는 철시되고,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한복맵시도 여간 화사하지 않을 것이다. 한복 특유의 포근한 느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설날’이야말로 신춘의 기분이 든다.

‘설날’의 참뜻은 차분한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 경제적 관념으로는 시간의 낭비도 낭비로 치부(置簿)되겠지만 때로는 마음의 평화가 재생산의 활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세시기(歲時記)를 보면 정월의 세시풍습은 으레 세배와 차례에서 시작된다. 그런 ‘애친경장(愛親敬長)’과‘숭조보근(崇祖報根)’의 정신은 한 해에 두 번이 아니라 열두번도 있음직하다.

더구나 오늘의 속된 도시생활 속에서 마음 다소곳이 선조를 공경하고, 또 흐뭇한 선린(善隣)의 정을 나누는 행사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신정, 설날의 뜻은 이런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20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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