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다.
공기 속에서도 춘의(春意)는 감출 수 없다. 아파트의 매화는 어느새 새 눈이 통통하게 부풀어 있다. 목련의 꽃자리도 솜털에 윤이 난다.

시후(時候)를 잊지 않고 계절만은 여전하다. 옛글에 보면 겨울은 다른 삼계(三季)의 휴지기(休止期)다. 말하자면 계절의 변전(變轉)에 ‘코머’ 하나를 찍고 잠시 쉬는 시간인 셈이다. 따라서 봄은 천의(天意)가 자연에 순응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다른 계절들이 서사시(敍事詩)라면 봄은 사뭇 서정시(抒情詩)의 경지다.

우리의 생활도 변전처럼 좀 ‘리드미컬’했으면 좋겠다. 사람에겐 추상(秋霜)같은 자세도 필요하지만, 따로는 천의가 자연에 순응하듯 춘기(春機)의 ‘리듬’도 가져봄직 하다.

옛사람들도 “마음은 가을의 정신으로, 행동은 봄의 정신으로 하라”고 가르쳤었다. 우수가 지나면 서서히 발길을 떼기 시작한다. 기온이 영상 5도 이르면 수목들도 심호흡을 한다. 수액(樹液)이 오르고 생기(生氣)를 찾는 것이다.

기상청의 기록을 보면 2월 중순께부터 화신(花信)은 하루 20km의 속도로 북상한다. 제주의 경우 어느새 산수유가 피기 시작하는 것이다. 금방 그 뒤를 따르는 매화전선(梅花前線)은 3주정도면 부산에 상륙, 줄달음친다. 한반도는 이제 화신권(花信圈)에 접어든 셈이다.

매화의 뒤를 쫓는 화신은 개나리, 한달쯤의 시차를 두고 불들이기 시작한다. 개나리 전선이 지나가면 긔 뒤엔 갖가지 꽃들이 앞을 다투어 따라간다. 진달래, 벚꽃이 숨이 차서 달음박질을 쳐 온다. 이런 꽃전선의 상공에는 제비들이 날고 있다. 봄은 이처럼 무르익는 것이다.

중국의 어느 문인(文人)은 꽃과 달과 미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생각은 아예 하고 싶지도 않다고 노래한 일이 있었다. 순정파(純情派) 치고는 봄 지나친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지나친 감상(感傷)만도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도 봄이 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상상(想像)만 해도 삭막하다. 몸도 마음도 함께 추워진다.

봄의 새들이 파랑파랑 하늘을 나(飛)는 생명감(生命感), 꽃들이 자유분방하게 피어나는 점감(情感)마저 느낄 수 없는 일상(日常)이라면 시로 우리의 고달픔은 어디서 위로(慰勞)를 받겠는가.

3월부터 그런 봄은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2014. 2. 28)
 

저작권자 © 금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