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라산을 다녀왔습니다.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라산 그 품속에 안겨 있으면, 그 넉넉하고 순결한 산이 품어주면 말입니다. 새로운 장관을 보고싶은 욕심도 잊게 만드는, 마음의 안주를 얻게되는 경지가 찾아오는 듯 합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몇번째 한라산을 찾다보니, 산이 주는 맑은 기운을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지요. 돌아와 한라산 사진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이런 방식이지만 조금이나마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6월8일, 해가 들면서 초여름 한라산은 생동감이 넘친다. 초록, 연두, 노랑 등 그 어느 보석보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빛을 띤다. 

아침해가 솟아 올랐으나 바다를 감싼 해무(海霧)가 눈 아래 망망한 초원지대를 지나며 천만년 신비(神秘)에 싸여 숲을 꿰뚫고 한라산 정상으로 건너와 작은 몸을 감싼다. 그즈음 아직도 아침 안개속에 잠자던 오름들이 잠자리에서 서서히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는다.

멀리 성산일출봉이며 우도섬 전경이 번듯하게 드러나면서 손을 내밀면 손바닥으로 들어올 것처럼 가까이 몰려 온다.

어디선가 노루도 뛰어나와 이리저리 달린다. 노루들도 신이 났나보다. "꺽, 꺽~"소리도 질러댄다. 새소리도 들린다. 바람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이것이 한라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향곡인가보다. 

한라산은 백록담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제주를 찾는 시인 묵객들이나 선비들이 꼭 한라산을 오르면서 이 백록담에서 아름다운 제주 산하를 한 눈에 내려보고, 산정(山頂)의 풍광을 줄겼다 하니, 그들은 모두가 백록과 더불어 놀았던 신선의 풍취를 닮으려 했을 것이다.

백록담에 올라보니 1,950m 한라산 정상은 마치 솥에 물을 담아 놓은 모양과 같은 것 같다. 이래서 부악(釜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나 이해가 간다. 이 분화구 둘레는 약 4km,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록(白鹿)을 희롱하며 놀았다해서 백록담(白鹿潭)이라 불려졌다 한다.

북쪽을 보니 복잡한 제주시 너머 푸른 물위에 마치 철모를 덮어 놓거나 아니면 표류하는 나뭇조각처럼 수없이 떠 있는 다도해(多島海) 섬들을 볼 수 있었다. 남쪽으로 눈을 주면 서귀포와 중문 해안가에 떠있는 섬들이 마치 데리고 노는 이들의 장난감처럼 귀엽게 보인다.

백록담에서 보는 한라산 정상 주위 풍광 또한 아름답다. 그것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과 우주에 대한 작은 상념(想念)들을 줄줄이 엮어내게 하면서 어떤 외경(畏敬)의 경지로 빠지게 한다.

산정에 오른 사람만이 웅혼한 자연 앞에 아주 왜소함을 비로소 확인하게 한다. 그러기에 이 산정에 서면, 사람이 누리는 시간과 사람이 사는 공간을 잊어버리고 신의 언어와 그 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한라산은 저녁노을을 받으면 더욱 신령스런 모습으로 변한다. 산기슭의 오름들도 꿈틀댄다.  억겁세월 땅속에서 지내던 혼령들이 모두 일어 서는 듯하다.

삼신(三神)이 들놀이한다는 한라산, 신비한 영봉(靈峰)에서 인자(仁慈)를 얻게 되고, 기구한 산록(山麓)과 괴석(怪石)에서 유토피아를 스스로 익혔을 때 깊은 정 남겨두고 떠나기가 서러워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명호(鳴呼)라! 하고 울고 싶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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