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서세옥 화가가 그려 법정스님께 드린 작품. 스님이 '진리의 길'이란 책을 엮을 때, 부탁드린 것으로 추측된다.  '인간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을 부처상에 넣은 것으로 짐작케 한다.

공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함이라고 했다. 정직함이 삶의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직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은 일시적으로 화를 모면하는 것일 뿐 오래 지속될 수는 없다고 했다.

물론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남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을 정직하다고 여기는 것은 미워한다.”라고 말했듯이 정직하다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심청전>에서 심청이 자신은 굶은 채 아버지에게 얻어 온 밥을 권하자, 아버지가 “너는 밥을 먹었느냐?”라고 묻는데, 심청이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효도를 한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는 게 옳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정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정직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객관적인 진실에 충실한 것. 즉 대아를 위하여 소아를 버리는 극기를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다시 말해 공자는 저울추를 이리저리 옮겨서 무게를 맞추듯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사리에 맞게 변통하는 능력 즉‘권“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래서 공자는 아무리 함께 배우고 바른길로 나아가고, 서게 된다 즉 인격을 갖춘다 할지라도 함께 사리에 맞게 행동하기는 어렵다.

함께 배우는 사람이라도 함께 바른길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사리에 맞게 저울질하여 행동할 수는 없다.

결국 배움에 뜻을 두고 올바른 선택을 하고 인격체로 성장함에 있어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상대방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고 자신이 알아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리에 맞게 행동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점은 여전히 정직한 것이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순환론으로 보인다. <논어>와 같은 큰 책은 의례 다중적이어서 모순으로 보이는 점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예를 들면 <신약성서>에 전지전능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도 모순이다. 하지만 공자가 말하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무엇인가를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정직한 삶은 앎의 문제가 아니고 실천의 문제일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자신부터 올바른 것 즉 정직함이었다. 지도자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만사가 제대로 되지만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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