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물결이 들고 나는 자리에는 높은 모래 언덕이 생겼습니다. 그 모래 언덕에 앉아 나는 바다 물결을 느낍니다. 오래 바다를 느끼다 보면 바다 물결은 또 다시 마음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외로워서 왔을 이 바다.  그리고 이별 그 이후의 아픔을 버리려 왔던 바다에는 오늘도 그 한줌 마음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의 슬픔은 이미 슬픔의 물결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에서 슬픔과 기쁨, 외로움과 따뜻함은 하나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나는 왜 사람들이 바다에 와 이별의 슬픔을 던지는지, 왜 사람들이 외로움에 고개를 묻고 바다에 와서 울어야 하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갔습니다. 바다는 사람의 가슴보다 더 절절하게, 그리고 사람의 목청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주는 아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맛의 평등함을 이룬 바다는 외로움과 슬픔이 그저 작고 작은 것일 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일깨워 줍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바닷가에 가면 나는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집니다. 그 돌이 저 수평선 너머까지 날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바다는 내게 또 하나의 신비입니다. 그렇게 크고 넓고 깊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바닷물을 만질 수는 있지만, 바다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저 알 수 없는 바다가 다가 옵니다.

어쩌면 우리는 바다의 깊은 곳에 가 이르고 싶은 열망을 돌에 담아 바다로 던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바다는 그 깊은 속으로 내 마음의 열망을 다 알아 줄 것만 갔습니다.

그 순간 바다는 내 어머니가 되고 나는 바다의 아들입니다. 바다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모성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돌을 던지며 우리들의 마음을 좀 알아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는 그 투정을 아주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이제 바다는 내 삶의 피안입니다. 피안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이제 피안을 찾아 먼 길을 우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척에 피안을 두고 살아가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주에서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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