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구자경 회장이 설립한 연암축산학교에서 특이하게 만든 난분

난과 인연이 된 것은 약 30년이 넘었다. 젊었을 때는 아파트서 약 250분까지 키웠었다. 그 때 기억으로는 중국춘란 ‘송매’ ‘대부귀’ ‘환구화정’ ‘여호접’ ‘홍도 소엽풍란. 대엽 풍란, 그 중에도 천연기념물 191호로 지정된 제주 한란 등 등 이다.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엔 죽다 남은 볼품없는 ’일경구화 ‘대일품’ 그리고 홍도‘소엽풍란’등이 우리집 토양에 길들여져 함께 하고 있다.

이런 경험으로 난은 욕심을 내 키워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고, 물주기 3년, 난은 꽃을 맺어 10여개월간 관리를 잘 해야 꽃을 피운다는 것, 또 꽃대를 맺을 시기에 물을 주지 말아야 '자기를 죽이려 한다.’ 는 보호본능에서 꽃을 잉태 피운다는 것을 익혔다.

얼마 전 제주에 갔다가 ‘모 화원’에 들렀었다. 텃밭에 양배추 종묘를 구입하려 갔는데 눈에 뭔가 ‘아! 하는 느낌이’이 초라한 어린 난묘를 발견했다. 언뜻 보니 ‘제주 한란’ 이였다.

추측에 난묘는 화분에서 이미 적응한 것 같았다. 난세가 빛이 나고 잎이 곧았다. ‘제주 한란’이 틀림없었다. 주인을 불렀다. 주인 아버지는 없고 아들이 대답에 응했다. "이 난, 무슨 난입니까?" "예, 그거 제주 한란"이예요. "그래요, 파는 것이요.?" "아닙니다"

"아버지가 산채를 해서 발브에서 새촉을 받고 있습니다." "나 부산 사람인데 세컨하우스에 두려고 하니 한분만 파세요."  "예! 저의 집사람 집도 부산 우암동인데요." 그게 통성명이 되어 한분을 구했다.

"인공 재배한 것은 아니죠.?" 다시 확인을 했다. "아닌데요, 그러믄요. 귀한 것입니다. 구할 수 없고 반출도 되지 않습니다. 화분에서 키운지가 3년이 넘은 걸요." 그와 한 대화다. 나는 ‘제주 한란’을 익히 알고 있다. 친구가 서울에서 유명한 난방을 했었다. 그런 인연으로 난에 대한 지식을 꽤나 익혔다.

그런 인연 때문에 ‘제주 한란’이 우리나라 난중에 향이 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것, 자생지가 한라산 밑 해발 3백에서 7백고지라는 것과 지금은 서귀포 돈네코에 ‘한란 박물관’을 건립해 매해 난 전시를 하고 자생지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 등 등.

어쨌든 이렇게 구한 ‘제주한란’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공항을 거쳐 부산에 갔고 왔다. 그런 다음  LG 구자경 회장이 난을 키우기 위해 건립한 연암 축산학교가 제작한 '난분' 에다 심어 놓았다. 보기엔 우선 세가 참 좋다. 산채에서 토양적응도 한 것 같다.

물론 나의 주관적 견해이다. 보통 ‘제주 한란’은 일본인들이 해방전후 남획해 일본토양에 적응시켜 일본한란 명품이라고 소개한 글도 본 일도 더러 있다. ‘제주 한란’과 비슷해 전문가도 식별이 어렵다는 것도 난에 미쳤을 때 알았다.

그게 1970년대 까지 그들이 일본 한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조상은 ‘제주한란’ 인 것이다. 이런 글은 90년대 ‘제주 한란’의 권위자인 이종석 제주대 교수가 밝혔었다.

‘제주 한란’은 우아한 자태와 고결한 방향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절대적인 보물임에 틀림없다. 우아한 자세와 유수한 향기를 생명으로 하는 동양란의 제일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향기가 풍윤하며 엽성은 웅위하면서 단아한 곡선미와 아울러 윤택함은 다른 동양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보적인 존재이다.

특히 꽃은 10월에서 11월까지 이어져서 일경다화성으로 화기가 길고 다양한 색채와 더불어 선미를 일깨워 주는 영감을 지난 숭고한 자태는 애란가의 환희의 대상이 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때 ‘난열풍’이 불어 춘란을 보러 금정산을 다 뒤집고 다닌 일도 있다. 그 때가 90년도쯤 될 것이다. 지금의 남산동 과학고, 외대자리, 예비군 훈련장 일대 춘란의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볼 수 가 없다. 결론은 난에 대한 취미란 입문하기는 쉬우나 성취하기란 정말 쉬운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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