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예부터 가장 뛰어난 사가(史家)의 본으로서 사마천(司馬遷)을 꼽는다. 실상 그의 ‘사기(史記)처럼 오늘날 까지 감동을 주는 역사책도 드물다. ’사기‘를 쓸 때 사만천은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 애썼다. 그러나 ’사기‘에는 꼭 하나 사실을 의식적으로 왜곡(歪曲)시킨 데가 있다.

사마천의 아버지 이름은 담(談)이었다. 그래서 그는 ‘담’자를 가진 인명을 모두 동(同)자로 바꾸어 놓았다. 비슷한 얘기가 서예기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에게도 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정(正)’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월(正月)을 초월(初月)이라 썼다. 또 꼭 ‘정’자를 써야 할 때는 언제나 ‘정(政’자를 썼다.

두보(杜甫)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한(閑)’이었기에 때문에 시를 쓸 때 절대로 ‘한’자를 쓰지 않았다.

이렇게 자기 아버지 이름을 ‘터부’로 삼은 것은 효심(孝心)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은 떠 이름을 아끼고 존중하는 명성욕(名聲慾)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명성욕은 효나 마찬가지로 공자(孔子)가 특히 높이 평가했던 것이기도 하다.

‘논어(論語)’에도 40, 50이 되어도 그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대단찮은 사람이라는 구절(句節)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좀 다르다. 당초부터 오욕(五慾)이라 할 때에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에 관한 욕망이 모두 이에 포함됐다. 그래서 그 의미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명대(明代)의 일여(一如)가 쓴 ‘삼장법수(三藏法數)를 보면 재(財), 색(色), 식욕(食慾), 명욕(名慾), 수면욕(水眼慾)을 오욕(五慾)으로 삼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효를 위해서 입신양명(立身揚名)만 한다는 것은 출가(出家)를 이상(理想)으로 삼는 불교에서는 번뇌(煩惱) 중의 번뇌라 할 수도 있겠다.

아닌 게 아니라 공자나 맹자는 명성(名聲)(fame)에 너무 얽매인 위인(爲人)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중요한 명예(名譽)(honour)가 오히려 등한시 당했다고나 할까. 여러 가지 점에서 공자의 사상에 반대했던 장자(莊子)가 그 ‘명성욕’을 비판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는 이름을 흉기(凶器)라고 까지 말했다.

그에 의한다면 모든 도덕적 행위가 명성욕을 동기(動機)로 해서 일어난다. 그래서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명성은 자기를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경쟁심을 일으키고 남과의 대립을 재촉한다. 그래서 죄악(罪惡)의 근원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 노장(老莊)의 영향을 받은 순자(荀子) 같은 사람은 이름을 훔친다는 것은 재보(財寶)를 훔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까지 말하였다.

요새 우리 주변(周邊)에서도 너무도 이름 넓히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수십년의 적공(積功)으로 애써 차지했던 이름을 지나친 물욕(物慾) 때문에 여지(餘地)없이 더럽히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한 가지 이들에게 공통적(共通的)인 것은 그들이 ‘명예(名譽)’의 참뜻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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