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두 얼굴>이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Janus-faced라고 쓴다. ‘옥스퍼드’사전은 그 뜻을 deceitful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협잡(挾雜). 사기(詐欺), 허위(虛僞) 등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이런 형용사로 표현되는 일은 대개 유쾌하지 못하다. 최근 모당의 혼란을 두고 ‘야누스’의 얼굴로 풍자하고 싶다. 불행한 일이지만, ‘야누스’당이 출현했다고 본다.

‘야누스’는 원래 ‘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고대‘로마’동전에 새겨진 그 실상을 보면 머리는 하나인데 얼굴은 둘을 가지고 있다. 그 두 개의 얼굴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고,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야누스’의 신(神)의 표장(標章)은 ‘열쇠’와 ‘몽둥이’이다. 열쇠는 문을 여닫는 구실을 하며 몽둥이는 남을 쭞아버릴 때 쓰인다. ‘야누스’는 그러니까 자신의 이해에 따라 남을 때려 내쫓기도 하고, 또 문을 열어 맞아들이기도 한다.

‘로마’신화에 따르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아직 분화하지 못한 한 덩어리의 혼란상태에 있다가 쓰러졌다가 저마다 혼돈(카오스)에서 갈려 나가게 되자 ‘카오스’가 ‘야누스’로 되었다 한다. ‘야누스’의 얼굴이 두 개인 것은 그 원래의 뒤죽박죽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인의 이름 앞에 <‘야누스’의 얼굴>이라는 말이 붙으면 결코 영광된 이름은 못된다. 정치인들이 모인 정당도 예외일 수는 없다. <‘야누스’의 정당>이란 바로 자기모순(自己矛盾), 아니면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정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正)자(字)의 어원은‘正’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政’이란 <正을 行한다>는 뜻이다. ‘정치’는 당연히<正을 行하여 다스린다>는 의미가 된다. 노(魯)나라의 실권을 쥐고 부정을 자행하던 계강자(季康子)가 정치의 묘책을 공자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政은 正을 의미한다> 그대가 위에 서서 먼저 정도(正道)를 가면 그것이 ‘正’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공자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正道’를 가지 않는 정치는 국민의 관심 밖에 있다. ‘正道’란 현대의 민주정치에선 국민과의 신의(信義)를 말한다. 따라서 그 신의를 저버릴 때 이미 ‘政治’는 ‘正治’가 아니다. ‘政治無關心’은 현대정치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것은 정치를 날로 관료화(官僚化)하며 행정화(行政化)해 가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정치는 국민부재(國民不在)의 상황에 있게 되며, 대화와 설득의 길은 가로 막히게 된다. 정치무관심의 다음 단계는 ‘아노미’현상이라고도 말한다. 이때는 벌써 이성(理性)의 상태는 아니다. 결국 정치무관심의 화(禍)는 언젠가 정치인 자신들에게 돌아간다.

오늘의 모당이 직면한 사태는 모당만의 책임이라기엔 너무 그 현실이 착잡하다. (201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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